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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검찰의 '무오류'독선이 부른 '기업의 사법리스크'] 통권286호
 
2024-02-14 13:5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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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통권286호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


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5-2부는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로 기소된 삼성전자 이재용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0209월 기소 후 35개월 만이다. 앞서 검찰은 지난해 11월 결심공판에서 이재용 회장에게 징역 5년과 벌금 5억 원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 사건을 그룹 총수의 승계를 위해 자본시장의 근간을 훼손하고 각종 위법행위를 동원한 삼성식 반칙의 초격차를 보여준 사건이라 규정했다. 반칙의 초격차라는 힐난이 법리에 기초한 구형 논리일 수는 없다. 검찰의 논리대로라면 삼성식 반칙의 초격차가 오늘의 글로벌 기업 삼성을 만든 것이 된다.

 

1. 2가지 핵심 쟁점

이번 재판의 쟁점은 2가지였다. 첫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의 합병에서 삼성물산에 불리하고 제일모직에 유리하게 합병이 부당하게 이루어졌는지가 여부다. 검찰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이재용 회장에게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잘못 인식하고 있다. 이는 삼성물산 지분을 갖고 있던 투기자본 엘리엇 삼성물산이 저평가됐다는 주장과 괘를 같이 하는 것이다. 엘리엇은 삼성물산이 갖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이는 모회사 할인 퍼즐(parent company puzzle)로 설명된다. 옛 삼성물산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 4.1%는 삼성그룹 전체의 지배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보유해야 하는 묶인 주식이기에 저평가된 것이다. 두 기업 간 합병비율의 부당성을 지적한 엘리엇은 실은 모회사 퍼즐을 알았기에 삼성물산 지분을 전략적으로 취득한 것이다. 그러한 이유로 주식을 취득해 놓고, 마치 속았다는 식의 행태를 보인 엘리엇을 검찰이 옹호한 것이다.


상장사의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 시행령(176조의 5, 합병의 방법 요건)에 명기되어 있다. 시행령을 기준으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이 10.35로 정해진 것이다. 모든 정보가 반영된 주가를 기준으로 정해진, 비인격적(impersonal)가격기구에 의해 정해진 비율이기에 부당 합병의 소지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두 번째 쟁점은 분식회계 여부다. 즉 검찰의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바)의 분식회계 주장도 근거가 없다. 보통 분식회계는 매출을 부풀리고 비용을 줄여 가공의 이익을 창출하고 이를 근거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방식이다. 하지만 삼바는 매출, 비용, R&D 지출 등 hard data를 손대지 않았다. 기업의 수익 창출 능력과 무관한 회계 평가 기준 변경이 가져온 일회성 이윤공시를 회계 분식으로 몰고 가서는 안 된다. 삼바가 적자임에도 주가가 고공행진을 이어간 것은, 미래의 기업가치가 현재 주가에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자폭(自爆)이 아닌 한 분식회계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분식회계 쟁점을 부연하면 다음과 같다. 201512월 삼바는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회계처리 기준을 변경한다. 그리고 그해 삼바는 1.9조 원의 이익을 보고(report)하고, 201611월에 삼바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다. 삼바는 2016, 2017년 순손실을 기록한다. 만약 이익 뻥튀기로 상장했다면 순손실을 기록한 2017년 삼바 주가는 곤두박질쳐야 한다. 삼바는 적자였지만 미래가치가 주가에 반영돼 주가는 계속 상승했다. 주가를 올리기 위해 분식을 했다라는 세간의 주장이 틀린 이유다.

 

20174월 금융감독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해 감리에 착수한다. 증권선물위원회(이하 증선위)20181114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의적 분식판정을 내리고 1120일 삼바를 검찰에 고발한다. 증선위는 삼성바이오에피스를 미국 바이오젠과 합작 설립한 2012년부터 종속회사가 아니라 관계회사로 인식했어야 한다고 판정했다. 2012~2014년 에피스를 단독지배하는 것으로 회계처리(연결) 한 것이 잘못이라는 주장이다. 바이오젠이 가진 동의권과 콜옵션에 비춰볼 때, 삼바와 바이오젠이 에피스를 공동지배하고 있는 것으로 판정했다.

하지만 증선위 논리는 오류 투성이다. 에피스를 설립한 2012년에 삼바의 지분은 85%이고 이사회 구성도 삼바 4(대표이사 지명권 포함) 바이오젠 1명으로 구성되었다. 경영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해 온 삼바가 에피스를 연결(자회사)로 처리한 것은 당연하다. 증선위의 바이오젠의 콜옵션을 실질적인 권리로 봐야 한다는 판정도 설득적이지 않다. 2012년 바이오젠에 콜옵션을 부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막 출발한, 실적을 내지 못한 회사에서 콜옵션이 갖는 의미는 당연히 제한되기 때문이다.

 

2. 김명수의 작위적 오도

김명수 전()대법원장은 2019년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권 강화를 목적으로 미래전략실 주도로 승계작업의 일환으로 합병이 이뤄졌다고 발언해 마치 승계작업이 불법인 것처럼 오도(誤導)했다. 소비자와 투자자의 선택을 받아 계속기업(going concern)의 지위를 이어온 기업은 경쟁력을 유지하는 한, 자연인의 사망을 건너뛰어 계속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승계작업을 수행하는 것은 당연하다.

 

승계를 위해서 핵심 계열사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자연스럽고 필요한 조치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실제 합병과정에서 불법이 동원되었냐는 것이다. 삼성물산에 불리한 불법이 동원되었다는 증거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부당합병일 수 없다.

 

말 세필과 영재센터가 청탁의 댓가라고 주장도 논리적으로 작위적이다. 경영승계는 주주의 사적자치이기에, 대통령이 결재한다고 경영승계가 되는 것이 아니다. 피붙이가 아닌 박근혜 대통령과 최서원을 경제공동체로 몰고간 것 자체가 잘못인 것이다.

 

3. 경영권 승계가 대통령 재가 사항인가?

이번 사건의 핵심은 이재용 회장이 면담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에게 합병을 통한 승계를 지원해달라고 요청했는가 여부다. 합병과 면담을 전후한 일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015526=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7월 결의 발표

527= 엘리엇, 주주자격으로 삼성물산에 합병 반대의사 통보

64= 엘리엇, 삼성물산 지분 7.12% 취득 공시. 삼성물산에 보유주식 현물배당 정관 개정 요구하는 주주제안서 발송

65= 엘리엇, 국민연금과 삼성SDI·삼성화재 등 삼성 계열사에 합병 반대 동참 요구하는 서한 발송

69= 엘리엇, 삼성물산 상대 주주총회 통지 및 결의 금지 가처분 신청

77= 법원, 엘리엇이 제기한 삼성물산 자사주 매각금지가처분 신청 기각

710= 국민연금 투자위원회 합병 찬성 결정

717= 삼성물산·제일모직 각각 임시 주주총회 개최, 합병안 가결

725= 이재용 회장 박근혜 대통령 단독면담

 

일지대로 하면, 국민연금 투자위원회의 합병찬성 결정이 난 2015710일이 실질적인 합병 날자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임시주총을 거쳐 합병이 법적으로 확정된 후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회장의 단독면담이 이뤄졌다. 이런 기초적인 사실관계를 무시하고 해괴한 묵시적 청탁주장이 이뤄진 것이다.

 

4. 190으로 진 검찰, 항소 부끄러운 줄 알아야

검찰이 8일 이재용 삼성 회장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1심 무죄 판결에 대해서 항소했다. 검찰이 제기한 19개 혐의 중 하나도 인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항소한 것이다. 운동경기로 치면 190으로 완패한 것이다. 그렇다면 검찰은 기소가 잘못되지 않았는지 성찰하는 게 순리이다. 검찰은 1심에서 무죄가 나거나 형량이 구형량의 일정 기준 이하로 나오면 기계적으로 일단 항소하는 경향이 있다. 법원의 판단에 잘못이 있을지언정 검찰의 판단에는 잘못이 있을 수 없다는 무오류의 독선이 깔려 있다.

 

미국 등 보통법 국가나 유럽 대륙 국가 중에서 프랑스 등에서는 피고인의 항소권은 있지만 검찰의 항소권은 아예 없다. 검찰의 항소를 인정하면 피고인을 1심에 이어 두 번 위험(double jeopardy)에 빠뜨린다고 보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검찰총장이던 20188 피고인은 항소할 때 비용을 생각하지만 검찰은 국가 비용으로 소추권을 행사하기 때문에 피고인의 처지를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검사는 항소한 사건이 무죄가 나도 크게 불이익을 받지 않는다.

 

하지만 당하는 삼성은 다르다. 이재용 회장은 1심에서 약 35개월간 재판에 총 96회 출석했다. 이에 따라 이 회장의 모든 일정은 재판을 중심으로 짜여졌다. 이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지속되는 한 운신의 폭은 좁을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등 성장 산업에서 다양한 인수합병(M&A) 전략을 검토해 왔으나 2017년 전장업체 하만 이후 M&A 시계는 멈춰 있다. 삼성은 라이벌 기업에 둘러쌓여있다. TSMC, Intel, Apple과 힘겨운 각축을 벌이고 있다. 경영의 요체는 의사결정이다. 제때 필요한 의사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기업경쟁력은 훼손될 수 밖에 없다. 그 자체가 국가손실이고 결국은 국민이 떠안는 것이다. 이를 검찰이 알 리 없고 헤아릴 리 없다. 검찰의 항소권남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경실련은 이번 1심 무죄 선고에 대해, 법원이 이회장의 삼성소유지배 확립을 위한 충실한 조연이었던 건 아닌지 참담하다고 논평했다. 그러면 법원의 역할이 민간기업의 소유지배구조를 와해시키는 것인가? 시민단체는 정당한 근거 없이 민간기업의 소유지배구조를 해체하는 조연인지 되묻고 싶다. 한국에서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기적이다.

 

본고는 한반도선진화재단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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