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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외교에선 내전, 정쟁엔 귀신인 나라
 
2023-06-19 14:49:59
◆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치개혁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당들이 총체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은 ‘정체성 위기’와 변화하는 사회 환경에 부합하고 반응하며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반응성 위기’를 겪고 있다. 신뢰의 위기도 심각하다. 정당들이 선거·권력 기능만 있고 국민을 대표하고 민의를 수렴해 정책을 만드는 정책 기능이 없는 ‘무늬만 정당’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보건사회연구원의 ‘한국인의 행복과 삶의 질에 관한 종합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정당과 국회의 경우 ‘신뢰한다’는 응답은 23.8%에 불과한 반면, ‘신뢰하지 않는다’는 비율은 76.2%에 달할 정도로 최저 수준이다.

최근엔 집권 세력의 협치 절벽과 거대 야당의 입법 폭주로 한국 정치에서는 극한 대결의 정치가 고착화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 거대 정당들은 이런 내재적 위기를 극복하기는커녕 기형적이고 퇴행적인 행태에만 매몰된 채 서로 물고 뜯는 심리적 내전 상태에 돌입했다.

집권당인 국민의힘은 지난 3월 김기현 대표 체제 출범 이후 여소야대를 극복하려는 절박함을 보이지 않고, 자신들만의 미래 비전과 어젠다를 제시하기보다는 야당이 주도하는 각종 포퓰리즘 입법과 선동과 음모를 방어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변화와 개혁을 통한 새로움도 없으며, 집권당으로서의 책임감과 정책적 역량을 찾아보기 힘든 무기력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한국갤럽의 정치인 호감도 조사(2월28일, 3월1일)에서 김기현 대표에 대해 ‘호감이 간다’는 18%,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62%로 나타났다. 이것이 김 대표의 존재감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국민의힘, 미래로 승부 않고 상대 공격에 몰두”

김 대표는 당정 협치를 강조하지만 대통령과 여당의 일사불란한 위계 체제가 형성되고, 친윤과 영남 출신이 당의 요직을 맡으면서 국민의힘에선 다양성과 역동성이 사라졌다. 오로지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거대 야당에 대한 공격에 화력을 집중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정쟁 유발형 일방주의 정치로 협치는 사라지고 대결 정치가 판을 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국민의힘을 향해 “새 정부의 미래라는 큰 화두로 승부를 해야 하는데, 지도부가 나서서 매일같이 갑론을박하는 지루한 논쟁은 진영 논리에 갇힌 대한민국의 현재 상태에서는 무익한 논쟁에 불과하다”고 밝힌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민주당도 도긴개긴이다. 지난 대선 패배 이후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허황된 믿음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왜 정권을 빼앗겼는지에 대한 통렬한 참회는 없고, 오로지 이재명 방탄과 대여 투쟁에만 집중하고 있다. 민생 살리기 법안엔 관심이 없고 국회 다수 의석을 앞세워 오직 양곡관리법, 간호법, 노란봉투법 등 내년 총선에서 특정 세력의 표심을 잡기 위한 편 가르기와 포퓰리즘 입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민주당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송영길 전 대표의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 김남국 의원의 수십억원대 코인 거래 등 개인 비리 의혹이 제기되면 무조건 정치 보복과 야당 탄압 프레임이라고 둘러댄다.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으로 민주당을 탈당한 윤관석·이성만 무소속 의원 국회 체포동의안이 부결되자 민주당 지도부는 방탄 비판을 피하기 위해 검찰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 한마디로 민주당은 ‘척하고 탓하는 정치’에 능숙하다. 민주당은 개혁 세력인 척, 서민인 척, 가난한 척, 도덕적인 척하고, 자신들의 모든 비리와 부패에 대해 검찰 탓, 언론 탓, 여당 탓으로 돌리고 있다. 여하튼 여야 모두 싸움엔 귀신같이 행동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초당적으로 대처해야 할 외교 문제에 대해 등신처럼 행동하고 있다. 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 성과를 ‘굴욕 외교’로 폄훼하고 미국과 일본에 적대적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저지를 위한 장외 집회에도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런 행동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각종 의혹으로부터 국민 시선을 돌리려는 의도로 보인다.


반면, 민주당의 중국을 향한 ‘굽신 외교’는 애처로울 정도다. 최근 이재명 대표는 중국대사관을 찾아가 싱하이밍 중국대사와 면담했다. 싱 대사는 “(미·중 경쟁에서)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은 반드시 후회한다” “한국의 대중국 무역 적자 확대는 한국 정부의 탈중국화 탓”이라며 정부를 비난하고 폄하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그런데 이 대표는 이를 저지하기는커녕 방조했다.

심지어 민주당은 이번 사태 책임이 싱하이밍 대사가 아니라 윤석열 대통령에게 있다는 ‘황당한 사대주의성 발언’을 쏟아냈다. 우상호 의원은 윤 대통령이 지난 4월 로이터 인터뷰에서 대만 문제에 대해 “일방적 현상 변경 절대 반대”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중국의 역린을 건드린 것이 문제의 발단이란 것이다. 싱 대사의 강성 발언으로 한국과 중국의 외교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 국회의원 5명이 중국 외교부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중국이 야당(민주당)과 대화하고 여당(국민의힘)은 상대하지 않는 ‘통야봉여(通野封與)’의 갈라치기 전략에 휘말릴 수 있다.

 

“민주당, 외교·안보에선 초당적 대처해야”

윤석열 대통령은 6월13일 ‘내정 간섭’ 논란을 일으킨 싱 대사에 대해 “부적절한 처신에 국민이 불쾌해하고 있다”고 직격했다. 안보 위기가 닥치거나 국익이 달린 문제에서는 야당도 초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기본이다. 반대로 정당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외교를 교묘하게 이용하고 선동하는 것은 하책이고 어리석은 것이다.

이제 여야 정당은 대한민국의 운명과 위상을 결정짓는 외교·안보 문제를 둘러싸고 정쟁을 일삼는 것을 멈추고 대한민국 국민의 이익에만 집중해야 한다. 여야가 싸울 때 편을 갈라 물어뜯으면서 귀신같이 행동하고, 서로 싸우지 말아야 할 외교 문제를 둘러싸고 외국에 이익을 가져다주는 등신 같은 행동이 상습화되면 정치는 망하고 결국 피해는 국민이 본다. 변화를 거부하고 기득권에 안주하며 ‘적대적 공생관계’로 연명하는 정당에 미래는 없다. 이제 ‘깨어있는 국민’이 결코 어리석지 않다는 것을 보여줘야 할지도 모른다.

여야는 ‘선천성 상생 결핍증’에서 벗어나 사회 변혁에 맞춰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지 치열한 가치 경쟁을 펼쳐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제3지대 정당’을 위한 넓은 공간이 새롭게 생겨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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