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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노동분야 사회적 대화 제대로 하려면
 
2023-06-14 11:50:42
◆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의 칼럼입니다.


한국노총이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대화 참여 중단을 선언하면서 노동 분야의 사회적 대화가 화두로 떠올랐다. 하지만 필자는 노동계가 경사노위에 참여하는 것이 사회적 대화라는 프레임에 동의하기 힘들다. 사회적 대화는 단순히 일반 집단 간의 대화도, 노사 간 대화도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진정한 노동분야의 사회적 대화라면 다음 세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첫째, ‘왜 노동 개혁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의식과 해결 의지를 참여 주체가 공유해야 한다. 지금 한국 사회는 급격한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를 겪고 있으며 산업의 첨단화·디지털화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 기성세대가 노동 분야에서 관련 문제를 풀지 못하면 자녀세대에 큰 부담을 줄 것이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결하지 않으면 약자와 자녀세대의 피해가 커진다.

둘째, 참여 주체의 대표성이다. 노동시장과 노사관계는 다양화하고 있다. MZ세대, 여성, 다양한 업종과 직군의 목소리를 담아내야 한다. 디지털 민주주의 시대에 다채로운 목소리를 반영하는 사회적 대화는 한국사회가 성숙한 단계로 진입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대표성이 결여되면 사회적 대화는 이른바 ‘핵인싸’(핵심 인사이더)의 담합을 위한 대화 자리로 전락하게 된다.

셋째, 사회적 책임성이다. 약자 집단을 배려하고 미래 자녀세대가 짊어질 부담을 덜어주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사회적 대화를 정쟁의 대상이나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한 독점물로 여겨서는 사회적 대화라 할 수 없다.

그동안의 사회적 대화가 이런 세 가지 요건을 갖췄는지 의구심이 크다. 문제 해결을 위한 가치를 공유하기보다는 집단이기주의가 앞섰다. 국민을 대표하기보다는 근로자 집단 전체로 보면 소수의 노조 조직 근로자들 위한 대화였고, 소속 집단의 이익과 동지애를 위한 대화에 그쳤다. 국민과 공익에 대한 소명의식도 부족했다.

이런 구조로는 미래를 위한 사회통합적 합의를 도출해 내기 어렵다. 설령 어렵사리 합의해도 추상적 수사를 담은 선언문을 발표하거나, 합의 비용을 국민에 전가하게 된다. 오히려 공익에 마이너스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런 사회적 합의라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사회적 대화를 할 역량도 안되고, 성과도 없는 데다, 단순히 대화 테이블에 앉아 각자의 이익을 교환하는 것이 과연 사회적 대화이고 공익에 부합할지 의문이다. 노동계가 대화 참여 여부를 볼모로 위협하면서 노·정 간에 ‘거래’라도 이뤄진다면 원칙 파괴와 혈세 낭비 등 또다시 공익을 희생할 수 있다.

노동계는 지금 두 가지를 정부에 요구하고 있다. 하나는 법치의 무력화다. 정부의 법치 강행이 괴로우니 노정 관계를 얼어붙게 하지 말고 법치를 느슨하게 하자는 의도인듯하다. 하지만 국민을 위한 보편적인 핵심 가치인 법치 무력화를 사회적 대화의 참여 조건으로 걸면 곤란하다. 노사 관계는 1층이 법치, 2층이 자치, 3층이 상생인 다층 구조다. 기초가 되는 1층 법치가 무력화하면 노사 관계라는 건물은 무너진다. 반면 1층이 탄탄하면 노사가 자율적으로 메뉴를 정하고 타협해 노사 상생의 규범을 설계할 수 있다. 이를 위한 정부·전문가의 지원이 가능하다.

다른 하나는 대화 중단의 빌미를 제공한 포스코 하청업체(포운) 노사 분쟁을 정부가 조기 해결하라는 요구다. 하지만 이는 개별 사업장 이슈다. 정부와 정치권이 개별 사업장의 노사 관계에 개입해 성공한 사례가 없다. 결국 사회적 대화 취지를 무시하고, 불참을 위한 꼬투리 잡기일 뿐이다. 전국 단위 조직이 현장 갈등을 줄여주지 못할망정, 현장 갈등을 정치화하고 확대 재생산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면 본말전도다. 노사가 추천하는 민간전문가에 의한 임의조정이나 중재로 현장의 노사 문제 해결을 촉진하는 것이 맞다.

지금과 같은 구태에 젖은 대화 행태로는 노동개혁은커녕 국민 피로도만 높여 사회적 대화 무용론이 팽배하게 된다. 모든 분야가 새롭게 변해 가는데 1998년 외환위기 때부터 시작된 사회적 대화는 제자리걸음이다. 미래지향적 노동개혁을 논의하기에 지금의 대화 시스템은 너무 낡은 그릇이다. 이대로 사회적 대화의 초심을 잃고, 노동 정치에 질질 끌려간다면 미래세대를 위한 노동개혁의 골든 타임만 놓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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