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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경제] 중소기업만 잡는 중대재해처벌법
 
2023-03-31 16:57:04

◆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경제질서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월27일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같은 해말까지 이 법률 위반으로 입건된 사건 수는 229건에 달하지만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고작 11건이다. 이 중 중견기업 1건을 제외하고 10건은 모두 중소기업·중소건설사다.중대재해처벌법으로 기소된 대기업은 단 한 곳도 없다. 특히 중소건설사가 최악이다. 11건의 사고 중 7곳이 중소건설사인데 이들은 직원수가 10∼40명인 소규모 기업이다. 상시근로자 50인 미만 사업 또는 사업장이거나 공사금액 50억 원 미만 건설공사 현장의 경우 이 법률의 적용이 내년 1월 27일까지 유예되지만, 상시근로자 50인 미만이라도 공사대금 50억 원 이상 건설공사 현장은 이 법률이 적용되고 있다.기업규모가 작을수록 사고발생 및 사법 리스크가 크다. 이는 일찌감치 예상된 것이었고 전문가들이 이미 누차 지적해 왔던 문제다. 경제적 약자를 돕겠다고 입버릇처럼 호언장담하는 한국 국회가 도리어 여건이 어려운 중소기업, 특히 소규모 건설기업에게 대형 사법리스크를 안긴 셈이다. 더구나 수사 장기화로 이들 기업은 2차 피해를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수사기관(노동청ㆍ검찰)이 경영책임자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11건)하는 데 걸린 기간은 평균 237일이다. 노동청 수사가 평균 93일이고, 사건이 검찰로 넘어가 다시 144일이 걸렸다. 판결을 받기까지가 아닌, 검찰이 기소하는데 걸린 시간만 이 정도다. 법률 시행 후 1년 2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판결이 난 사건은 한 건도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사건 처리가 이처럼 장기화되는 이유는 우선 누가 과연 경영책임자인가를 가려내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법률에는 ‘사업대표’와 ‘이에 준하는 자’를 경영책임자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 중 누가 경영책임자로서 권한과 책임을 갖고 의무를 이행했는지 확인해야 하고 복수의 대표이사와 사업부문별 대표이사를 둔 경우도 피의자 특정을 위한 조사에 많은 시간이 소모된다. 그런데 법률규정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입건 및 기소된 경영책임자는 모두 대표이사다. 현재까지 CSO(최고안전보건책임자)를 선임한 기업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에도 CSO가 경영책임자로 기소된 사례는 없다. ‘대표이사에 준하는 최종 의사결정권을 가진 자만 경영책임자가 될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법률 위반 사실 자체를 확정하기도 어렵다. 사고 발생시 법 위반 사실을 증명하려면 경영책임자의 고의와, 고의와 사고 간의 인과관계를 증명해야 한다. 경영책임자의 관리책임 위반을 발견한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사고를 발생시킬 고의까지 증명해야 하는데, 세상에 어떤 경영책임자가 고의로 사고를 내기를 원하겠는가. 사고의 경우 증인을 찾기 어려운 경우가 많고, 증거 또한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근로자의 부주의로 인한 사고의 경우에도 일단은 경영책임자가 수사를 받아야만 한다. 더구나 노동청과 경찰의 수사경쟁으로 수사 인력이 방대해지고, 중복수사도 만연한 실정이다. 현장 및 본사 압수수색, 대표이사 입건, 상당한 범위의 관련자 소환조사 진행 등 수사 범위가 넓고, 기존 사건의 수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신규사건이 계속 발생ㆍ누적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본래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법률이다. 이미 같은 내용의 ‘산업안전보건법’이 있다. 이 법률을 개정하면 될 일을 국회의원들이 서민들의 표를 긁어모으고자 무리하게 만든 법률이 오히려 서민을 울린다. 요즘 변호사 수가 많이 늘어나고 있지만, 중대재해처벌법 특수로 작년 로펌들의 매출액이 크게 늘었다고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사건 재판 중 위헌법률심판제청이 접수됐고 검찰 내부 및 법무부 연구용역 결과에서 위헌성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법률 같지도 않은 이 엉터리 법률은 그야말로 재앙이다. 국회는 책임지고 조속히 이 법률을 폐기하고 산업안전보건법으로 일원화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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