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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실질적 다수결’ 위배 길 열어준 헌재
 
2023-03-24 14:48:54
◆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미디어·언론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교수

현행 헌법상 위헌 여부의 최종적인 판단권은 헌법재판소에 귀속된다. 1988년 창립 이후 헌재는 위헌법률심판권, 탄핵심판권, 정당해산심판권, 권한쟁의심판권, 헌법소원심판권 등 5가지의 권한을 행사해 현대 헌정사의 중대한 변곡점마다 헌법 이념을 수호하고, 국민의 권리를 확대하며 역사의 물줄기를 바꿔 왔다. 헌재의 기능이 활성화하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수준은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앞으로도 헌법 수호자로서의 헌재는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제도적 자산’이 될 것이다.

지난 30여 년간 헌재의 결정례 중 대부분은 국민의 법감정과 일치했다. 하지만 선뜻 국민이 공감하기 어렵겠다고 생각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23일의 이른바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 박탈)법’에 대한 판단이 그 경우 중 하나다. 이는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대폭 축소하는 관련 법의 개정을 말한다.

법률 개정안의 내용 자체도 큰 문제이거니와 법안 통과 과정에서의 적법절차 원칙 위반은 과히 헌법 교과서에서만 봤던 ‘다수결의 원리 무시와 절차적 정당성 훼손’의 극치였다. 그중 국민이 가장 참기 어려웠던 장면은 국회 법사위에서의 ‘꼼수 위장탈당’이었다. 법사위 안건조정위는 법안의 신중한 처리를 위해 여야 3명씩 6명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민주당은 자당 의원 1명을 위장 탈당시켜 야당 몫이라고 우기면서 실질적으로 4 대 2로 만들어 법적으로 최대 90일이나 보장된 안건조정위를 단 17분 만에 다수의 힘으로 밀어붙였다. 그 직후 전체회의까지 열어 단 8분 만에 조정안을 처리, 본회의에 회부했다. 단 하루 만에 온갖 편법을 동원해, 70여 년간 유지되던 형사사법 제도를 극도의 혼란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하지만 법무부가 고육책으로 시행령 개정을 통해 검찰의 수사 대상 분야를 ‘부패와 경제’로 대폭 확대하면서 서민들의 삶과는 거리가 먼 법률 논쟁만 난무할 뿐이다.

헌재는 이렇게 꼼수를 동원한 위장탈당에 대해서는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당연한 결정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앞의 절차가 헌법 위반이면 속행되는 후속 절차도 위반이라는 게 일반적인 인식일 텐데, 헌재는 법사위원장이나 국회의장이 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헌법 위반이 아니라고 한다. 전에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지만 일반적인 국민의 법감정이나 헌재에 걸었던 기대와는 거리가 멀다.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절차를 엄격히 준수하지 않으면 불법이고 허용될 수 없다는 게 헌법상 적법절차 원칙이다.

백보 양보해 헌재의 결정이 입법권을 존중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하더라도 이런 결정례가 반복되면 국회에서 ‘실질적 다수결원칙 위배’ 상황이 재발할 때 이를 견제할 최종 방어기제를 헌재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지나치게 정치나 정책 결정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서라지만, 헌법이 부여한 권한을 헌재 스스로 축소하는 게 바람직한가.

이렇게 본다면 헌재는 법무부에서 제기한 권한쟁의심판 사건에 대해서도 각하결정이 아니라 본안 심리를 통해 ‘검수완박법’의 위헌성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혔어야 했다. 적법절차원리는 입법·사법·행정에 차별 없이 엄격히 적용돼야 한다. 국회만 예외일 수 없다. 국회의 특권 내려놓기는 적법절차원리를 철저히 준수하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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