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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공동체자유주의와 시대정신] 통권 87호
 
2019-02-20 10:4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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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통권87호  

<공동체자유주의 기획시리즈 2>

김주성 한국교원대학교 교수

 

1. 현대지성의 흐름

 

공동체자유주의의 시대정신을 평가하려면, 현대정치사상의 흐름부터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20세기 최고의 자유주의 철학자로 꼽히는 롤즈(J. Rawls)1971년에 사회정의론을 출간하자 의무론적 자유주의가 세계지성계를 지배하게 되었다. 이에 반발한 샌델(M. Sandel), 매킨타이어(A. McIntyre), 왈쩌(M. Walzer), 테일러(C. Taylor)와 같은 공동체주의자들이 의무론적 자유주의를 혹독하게 비판하면서 1980년대를 풍미하였다.

 

거대한 지성논쟁이 지루하게 계속되자, 이를 타개하려는 흐름이 두 갈래로 나타났다. 하나는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를 종합하려는 흐름이었고, 다른 하나는 근현대의 정치경험 속에서 발견한 공화주의를 새로운 정치전통으로 재해석하려는 흐름이었다.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를 종합하려는 흐름은 21세기에 들어와 에치오니(A. Etzioni)의 자유공동체주의와 박세일교수의 공동체자유주의로 대표된다. 공화주의를 재해석하려는 흐름은 포칵(J. Pocok)류의 신아테네공화주의와 페팃(P. Pettit)류의 신로마공화주의로 대표되고 있다.

 

자유공동체주의는 소규모 공동체운동을 통하여 그동안 소홀했던 시민의 덕성을 육성하려 하고, 공동체자유주의는 자유주의에 내재된 공동체의 가치를 발굴해서 정치공동체의 연대성을 강화하려 했다. 신아테네공화주의는 고대 아테네의 정치경험을 바탕으로 해석된 공화정치의 이념으로 자유주의에 비우호적이지만, 신로마공화주의는 고대 로마의 정치경험을 바탕으로 해석된 공화정치의 이념으로 자유주의에 우호적이다.

 

출발점은 달랐지만 점차 자유공동체주의는 신아테네공화주의와 많은 부분 문제의식을 공유하게 되었고, 공동체자유주의는 신로마공화주의와 많은 부분 문제의식을 공유하게 되었다. 금세기에 들어오면서 자유공동체주의는 소규모 공동체운동을 주도하는 신아테네공화주의로 수렴되었고, 공동체자유주의와 신로마공화주의는 가까우면서도 서로 다른 입지를 지키고 있다.

 

2.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

 

샌델을 비롯한 초기 공동체주의자들은 의무론적 자유주의를 공격하는 데에 통일전선을 지켰지만, 자유주의의 가치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왈쩌와 테일러는 근대 자유주의의 가치를 수용했지만, 샌델은 비판했고 맥킨타이어는 부정했다. 왈쩌와 테일러는 자유주의적 권리와 정의를 존중했지만 샌델과 맥킨타이어는 자유사회의 다원주의 문화를 경멸했다.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를 융합하려는 후기 공동체주의자들은 처음에는 통일된 입지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입론과정에서 서로 다른 입지가 확인되었다. 자유공동체주의는 공동체주의의 입장에서 자유주의를 포섭하였고, 공동체자유주의는 자유주의입장에서 공동체주의를 포섭하였다.

 

자유공동체주의는 주로 셀즈닉(P. Selznick), 엠마뉴엘(E. Emanuel), 골딩(M. Golding), 에치오니(A. Etzioni)가 이끌었다. 이들은 주로 시민덕성을 높이기 위해 특수공동체 또는 지역공동체를 육성하여 자유주의적인 다원사회와 조화시키려고 하였다. 나아가 소규모 공동체활동을 통해서 시민참여의 심의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자 하였다.

 

공동체자유주의는 스프라겐스(T. Spragens), 리안(A. Ryan), 갤스턴(W. Galston)과 한국에서는 박세일이 이끌었다. 이들은 주로 정치사회를 개인의 본질적인 자유와 권리가 보호되고 자유주의 가치와 덕성을 꽃피울 수 있는 자유주의공동체로 재탄생시키려고 하였다.

 

에치오니와 갤스턴은 1990년대부터 소규모 공동체를 활성화시키려는 책임공동체운동을 함께 했다. 박세일교수는 책임공동체운동의 영향을 받아 2006년에 한반도선진화재단을 설립하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공동체자유주의를 내세웠다.

 

3. 공동체주의와 공화주의

 

아테네와 같은 도시국가의 규모에서는 공동체주의와 공화주의의 정치정향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동체의 규모가 작을수록 구성원의 연대의식이 강하고, 공동의 목적이 무엇인지 뚜렷하고, 누구에게나 공공영역에서 자기역할이 분명하다. 아테네의 정치경험은 바로 이런 특징적인 국면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공화정이란 정의와 공유된 이익을 위해서 모인 구성원들이 서로 합의하여 공공의 문제를 풀어가는 정치공동체를 일컫는다. 아테네는 시민공화체제였다.

 

아테네는 동질적인 사회였고, 시민들은 정치운영문제와 평화 때나 전쟁 때에 맡을 역할을 잘 알고 있었다. 센델을 비롯한 초기 공동체주의자들이 대부분 아테네의 정치경험을 바탕으로 해석된 포칵(Pocock)류의 신아테네공화주의에 합류한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정치정향이 같았기 때문이다.

 

공화국의 원어인 리퍼블릭(republic)은 본래 로마의 정치제도를 가리키는 라틴어였다. 로마는 아테네와 달리 여러 민족들이 연합한 대규모의 제국이었다. 로마는 도시국가에서 성장하여 제국이 되었다. 아테네처럼 동질적일 수도 없었고 민중이 한 자리에 모여 정치를 주도할 수도 없었다.

 

로마에서는 민중이 정치를 좌우하는 자기지배의 자유를 확보하려했던 아테네와 달리 자의적인 정치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비지배의 자유를 확보하려하였다. 정치권력이 자의적으로 행사될 수 없도록 구상된 권력분점, 견제와 균형, 또는 법치는 공화주의의 핵심적인 정치제도이다. 공동의 이익을 위해 책임과 의무를 다하려는 공공정신, 법을 준수하고 공공의 일에 대한 헌신하려는 애국심은 공화정치를 지키는 핵심적인 시민덕목이었다.

 

현대국가는 고대 로마보다 규모가 더 크고 사회관계망이 더 복잡한 다원적인 정치공동체이다. 아테네보다는 로마와 가족적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거대규모의 국가공동체에서는 공동이익이 구체적일 수 없으며, 복잡한 국가운영문제에 대해서 정치의견을 뚜렷이 갖기 어렵고, 전시나 평시에 맡을 구성원들의 역할이 고정되어 있지 않다. 현대국가에서 아테네와 같은 소규모의 정치공동체를 지향할 수 없다.

 

이런 까닭에 초기 공동체주의자들과 자유공동체주의자들이 합류한 신아테네공화주의는 국가와 가정 사이에 있는 중소규모의 공동체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러나 공동체자유주의자들이나 신로마공화주의자들은 거대규모의 현대 정치공동체에 적용할 정치원칙에 관심이 많았다.

 

신로마공화주의자들은 로마의 정치경험을 재해석하여 자의적인 정치권력을 제어할 수 있는 견제적 민주주의를 구상하였고, 공동체자유주의자들은 파당적 갈등을 극복하고 정치공동체의 연대성을 고양하고자 고민하였다. 이들에게는 공유하는 문제의식이 많고, 특히 한국의 정치위기를 극복하는데 도움이 될 정치자원도 많다.

 

4. 정치위기와 시대정신

 

한국의 정치위기는 새 천년 초반에 나타나기 시작하여 최근에 증폭되고 있다. 정치위기는 두 차원에서 진단될 수 있는데, 하나는 박세일교수가 진단한 역사공동체의 붕괴위기이고 다른 하나는 최근에 나타난 정치체제의 붕괴위기이다. 복합적인 정치위기를 극복하려면 다양한 정치자원이 동원되어야 한다.

 

역사문화의 차원에서 보면, 국가의식을 압도하는 민족의식이 정치사회의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민족분단의 현실은 외골수의 민족의식을 강화시켰고, 이러한 민족의식은 국가의 정체성을 훼손시키고 있다. 헌법전문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질서의 문구를 헌법개정을 통하여 자유를 뺀 민주적 질서로 바꾸려하거나, 1948년의 대한민국 건국을 부정하고 1919년의 임시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치부하려고도 한다. 얼마 전에는 광화문 광장에 김정은 국방위원장의 방한을 환영하는 백두혈통 칭송단이 나타났다. 민족통일을 위해서는 국가공동체의 정치적 가치를 희생할 수도 있다는 통일지상주의적인 민족의식이 얼굴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정치체제의 차원에서는 대의민주주의, 3권 분립 및 견제와 균형의 정치원리가 위협받고 있다. 각료중심으로 운영되어야할 행정부가 청와대비서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적폐청산과정에서 인권침해의 사례가 나오고 재판과정에서 사법권의 독립이 위협받고 있다. 유수한 공영방송들이 언론노조에 장악되어 공정보도가 침해되고, 친 노조 반 기업의 경제정책으로 자유시장의 경제활동이 위축되고 있다. 최근에는 촛불혁명정신을 앞세워 법절차를 왜곡하는 현상이 늘고 있다. 남북한의 신사협정에 불과한 4.27 판문점 선언이 국회비준절차를 밟고 있거나, 국가 안보에 관한 9.19 군사합의서는 국회비준사항인데도 대통령이 단독으로 처리하고 있다.

 

비정상적인 정치행위로 증폭되는 복합적인 정치위기를 극복하려면 중층의 정치자원이 동원되어야 한다. 역사문화차원의 정치위기에는 공동체자유주의의 정치자원이 동원되어야 한다. 교육공동체, 시민공동체 및 국가공동체 차원의 단계별 포럼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극복할 실마리를 찾기 어렵다. 정치체제차원의 정치위기에는 신로마공화주의의 정치자원이 동원되어야 한다. 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를 지키려는 국민들의 공화주의적 애국심이 불타오르지 않으면 궁극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5. 공동체자유주의의 시대적 임무

 

공동체자유주의는 국론통합의 문제를 공동체주의적으로 해결하고, 국가번영의 문제를 자유주의적으로 풀어가려고 한다. 갈등의 시대에 국론통합을 이루려면 최종적으로 국가차원의 포럼기구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 경제위기일수록 자유시장의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해야 한다. 국민감시로 정부의 반시장적인 경제정책이 통제되어야 한다. 공동체자유주의의 정치자원을 폭넓게 동원해야 할 시기이다.

 

복합적인 국론분열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최종적으로 국가차원의 공론화위원회를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 공론화위원회는 공동체주의의 심의민주적 포럼기구이고, 공화주의의 견제민주적 포럼기구이기도하다. 민의의 수렴장치인 동시에 정부권력의 견제장치로서 효과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장시간 국론분열을 부추겨온 정치사안일수록 공론화위원회에 회부해서 국론통합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국가정체성에 관계된 역사교과서문제나 최근에 불거진 탈원전 문제를 정식으로 회부해보면 좋을듯하다. 그렇지만 정책결정을 위한 공론화위원회의 범람현상은 통제되어야 한다. 공론화위원회가 행정편의를 위해 운영되어서는 안 된다.

 

반시장의 정서가 지배하고 있는 정치현실에서 국가번영의 최우선 조건은 무엇보다도 자유주의적인 가치의 보호에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언론의 자유와 경제활동의 자유이다. 주요 공영방송이 언론노조에게 장악되어 보도의 공정성이 훼손되고 있다. 드루킹 사건에서 보듯이 전자장비를 통한 여론조작이 대규모로 일어날 수도 있다. 언론의 자유와 보도의 공정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국가사회는 생명력을 잃고 곧바로 시들어버린다.

 

경제활동을 제약하는 정부의 시장개입정책은 여러 가지다. 경제활동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계약의 자유, 재산권 및 세금정책을 꼽을 수 있다. 소득주도성장정책으로 말미암아 시장에서 계약의 자유가 축소되고 있다. 국가의 경제여건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최저임금이 설정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무리하게 추진하면 실업률이 치솟는다. 얼마 전까지도 여당대표가 토지국유제를 들고 나왔었다. 재산권을 흔드는 일은 자유시장경제에서 가장 위험한 일이다. 무리한 세금정책으로 뜬금없이 세수가 늘고 있다. 세율은 경제활동의 활력을 담보하는 선에서 조정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고율상속세는 기업경영의 지속성을 약화시키고 있다. OECD 평균수준으로 낮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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