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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北제재 해제 갈망 ‘文의 승부수’… 美 독단적 강경조치 유발할 수도
 
2020-07-09 15:08:10

◆ 이용준 전 외교부 북핵담당대사는 한반도선진화재단 대외정책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안보 라인 ‘자주파’ 교체로 본 전략

對美 자주파 인사들 전격 배치로 對北 경제 원조 ‘금단의 벽’ 넘기… 남북 공조가 한·미 공조 대체 가능성

美와 충돌하는 정책 땐 갈등 불가피… 한·미 동맹 위기 초래하고 美의 對韓 세컨더리 보이콧 부를 수도

북한이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로 직면한 심각한 경제 위기는 북한의 ‘빛나는 외교적 승리’의 산물이다. 30년에 걸친 미국과 국제사회의 압박을 온갖 외교적 책략으로 극복하고 핵무장의 집념을 관철해 낸 외교적 성공에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현재 북한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경제난은 북한이 승자로서 겪고 있는 ‘승자의 저주’라고도 할 수 있다. 북한의 급선무는 핵보유국으로서의 지위를 안정적으로 누리기 위해 이들 대북 제재를 해제하거나 감내할 만한 수준까지 완화하는 것이다. 평창동계올림픽 참석도, 3차례 남북 정상회담도, 2차례 미·북 정상회담도 모두 ‘승자의 저주’에서 벗어나려는 것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대북·안보 라인을 북한 친화적 성향의 정치인으로 대거 교체한 것은 한·미 동맹보다 대북 독자노선의 가치를 우선순위에 놓고 대북 제재 해제를 끌어내겠다는 정권 차원의 마지막 승부수로 보인다.

◇북의 착오와 좁아진 기회의 문

북한은 북핵 해법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세 가지 계산 착오를 범했다. 첫 번째, 대북 제재 내용의 강도. 북한이 핵무장을 완성해 가는 동안 국제사회가 이를 저지하고자 축적한 대북 제재의 강도가 북한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두 번째, 대북 제재 이행의 강도. 북한은 유엔 제재를 중국이나 한국의 도움으로 적당히 위반하며 생존할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미국이 ‘오토 웜비어 대북 은행거래 제한 법안’(2020년 4월 18일 발효) 등을 통해 대북 제재를 위반하는 외국 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을 적용하면서 누구도 제재를 적당히 위반할 수 없게 됐다. 세 번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추구하는 미국 정부 입장의 강도. 북한은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2019년 2월)에서 사실상 대외 전시용 시설에 불과한 영변 핵시설을 폐기하는 부분적 핵 능력 감축의 대가로 대북 제재 대부분을 해제하려 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비밀 우라늄 농축시설들의 폐기를 주장하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협상이 결렬됐다.

미국은 전면 비핵화 없이는 제재 해제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고, 북한은 제재 해제는 절실하지만 전면 비핵화는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미·북 간 타협의 여지는 없어 보인다. 북한은 제재 해제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한국의 대규모 경제 지원에 기대를 걸었었지만,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 제재를 각오하지 않는 한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규모 금전적·물질적 지원을 하는 건 불가능한 상황이다.

만일 올 연말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한다면, 그 이후엔 선거용 흥행이 더 이상 필요 없는 그로서는 북핵 협상에 관심을 두지 않을 개연성이 크다. 민주당의 조 바이든 후보가 대권에서 승리할 경우 미·북 정상회담 가능성은 더욱 작다. 따라서 싱가포르와 하노이에 이은 제3차 미·북 정상회담이 열리려면 11월 미국 대선 이전에 개최돼야 한다. 그만큼 북한으로서는 기회의 문이 좁아진 것이다. 한국 정부가 제3차 미·북 정상회담을 추진한다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최선희 외교부 부부장이 관심 없는 듯한 성명을 발표했으나, 이는 미리 몸값을 올리려는 북한의 상투적 협상 수법이다.

◇안보 라인 교체의 전략적 함의

이런 가운데 단행된 문재인 정부의 대북·안보 라인 전면 교체는 북한 못지않게 대북 제재 해제와 경제 원조의 실현을 갈망하는 문재인 정부가 던지는 하나의 승부수로 보인다. 이번 인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관료와 전문가 출신이 퇴조하고 정치인들이 대거 최일선에 배치된 점이다.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면면을 보면 대부분 북한 친화적 자주파 혹은 유화파들이다. 결과적으로는 ‘친미사대의 올가미’인 한·미 공조를 벗어던지라고 촉구한 지난달 김여정 부부장의 요구사항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화답과 같은 모양새가 돼 버렸다.

이들이 대북 정책의 전면에 포진됐다는 것은 관료와 전문가 출신들이 차마 넘지 못한 ‘금단의 벽’, 즉 대북 제재 해제를 정치적 방식으로 돌파하려는 정권 차원의 의지 표출로 판단된다. 청와대 외교·안보특보에 기존 문정인 특보에 더해 임종석·정의용 특보가 가세해 진용이 비대해진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대북 정책에 관여하는 외교·안보 부처들 안팎의 실무자나 전문가의 견해가 대북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어 보이는 상명하달식 정책 결정 구도를 지향하는 모양새다. 이런 정책 결정 구도는 문재인 정부 대북정책의 독자노선 강화와 이에 따른 한·미 갈등 고조를 예고하고 있다.

대북 제재로 인해 경제적 위기에 처한 북한에 현실적으로 남은 탈출구는 두 가지다. 하나, 미국 대선을 앞두고 위기에 처한 트럼프 대통령을 정상회담에 불러내 선거에 도움이 될 만한 그럴싸한 모양새를 만들어주는 대가로 상당 수준의 제재 해제를 얻어내는 것. 둘, 대북 제재의 담벼락에 작은 구멍이라도 뚫어 한국 정부의 대북 경제 지원이 가능하도록 파이프라인을 설치하는 것. 이를 토대로 한국의 새 대북·안보 라인이 추구하게 될 정책도 두 가지로 압축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미 대선 이전에 제3차 미·북 정상회담을 주선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유엔 대북 제재의 장벽 아래로 금강산 관광·개성공단 사업의 재개를 포함한 대북 경제 지원의 물꼬를 트는 일이다.

◇독자적 대북 정책은 가능한가

미 대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여론으로부터 그다지 환영받지 못할 것으로 보이는 부분적 비핵화 협상에 동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북한이 원하는 부분적 핵 감축은 미국이 원하는 북한의 비핵화와는 크게 동떨어진 개념이기 때문이다. 설사 트럼프 대통령이 원한다 하더라도 미국의 대외 전략이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원하는 톱다운 방식으로만 진행되지는 않는다. 그레이엄 앨리슨 교수가 지적한 대로 미국의 대외 정책은 ‘합리적 행위자’뿐만 아니라 ‘조직행태’나 ‘관료 정치’의 복잡한 결합 과정에서 배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3차 미·북 정상회담에 미온적일 경우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은 결국 한·미 대북 공조를 유보하고 독자적인 대북 경제 지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귀착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의 대북·안보 라인 전격 교체는 이런 점에서 ‘대미 설득을 통한’ 미·북 정상회담 주선보다는 ‘미국의 반대를 정면 돌파하는’ 독자적 대북 경제 지원을 염두에 둔 진용 구성으로 보인다. 그 방향으로 가게 되면 어느 시점엔가 남북 공조가 한·미 공조를 대체하게 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독자적 대북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미국 정부의 비핵화 정책과 상충하는 독자적 대북 정책은 한·미 동맹에 위기를 초래하고 미국의 독단적 대북한 강경 조치를 유발할 수 있다. 한국에 대한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 제재가 초래될 수도 있다. 더욱이 미·북 회담 독려를 통해 어떻게든 대북 제재 완화를 이뤄 보려는 것이 이 정부의 희망이라면 좋건 싫건 미국과 정책 공조의 끈을 계속 유지하는 게 불가결하다.

전 외교부 북핵 대사·차관보

■ 세줄 요약

북한의 좁아진 기회의 문 : 전면 비핵화를 요구하는 미국과 제재 해제가 절실한 북한 간 타협의 여지는 별로 없어 보임. 제3차 미·북 정상회담이 열리려면 11월 미국 대선 전에 개최돼야 함. 북한으로서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해제를 위한 기회의 문이 좁아진 상태.

대북·안보 라인 교체의 함의 : 문재인 대통령이 자주파 대북 유화론자들을 안보 라인에 전면 기용한 건 관료와 전문가들이 해내지 못한‘금단의 벽’을 넘기 위한 정권 차원의 의지 표출임. 즉 대북 제재 해제를 정치적 방식으로 돌파하려는 마지막 승부수.

독자적 대북 정책은 가능한가 : 어느 시점엔가 남북 공조가 한·미 공조를 대체하게 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음. 그러나 미국의 북한 비핵화 정책과 상충하는 독자적 대북 정책은 미국의 독단적 대북 강경 조치, 나아가 한국에 대한 세컨더리 보이콧 제재를 초래할 수도.


■ 용어 설명

‘승자의 저주’란 원하는 바를 손에 넣었지만 승리를 위해 과도한 비용을 치러 위험에 빠지게 된 상황을 뜻하는 말. 미국의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탈러가 1992년 발간한 책 ‘The Winner’s Curse’를 통해 널리 알려짐.

‘오토 웜비어 대북 은행거래 제한 법안’은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기관과 개인까지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을 담은 법안. 북에 억류됐다 사망한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를 추모하기 위해 이름 붙여진 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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