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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경영판단의 원칙' 명문화할 때다
 
2019-12-11 09:51:57

◆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경제질서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회사 이사는 배임죄에 취약
언제든 민·형사책임을 져야

전문가 보고서 등을 신뢰하고
善意로 의결했다면 보호하도록
'경영판단의 원칙' '신뢰의 항변'
상법에 명문으로 도입해야


회사 이사직은 언제든 민·형사상 책임을 져야 하는 위태로운 직책이다. 이사회 결의는 특히 신중해야 한다. 상법 제399조는 ‘이사가 고의 또는 과실로 법령 또는 정관에 위반한 행위를 하거나 그 임무를 게을리한 경우 회사에 대해 연대하여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고, 그 행위가 이사회의 결의에 의한 것인 때에는 그 결의에 찬성한 이사도 책임이 있으며, 결의에 참가한 이사로서 이의를 한 기재가 의사록에 없는 자는 그 결의에 찬성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한다. ‘이사회에서 이의를 제기한 기록이 없으면 찬성한 것으로 추정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추정한다’고 한 취지는 이사가 스스로 찬성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보통 회사 내규인 이사회 규칙은 이사들이 기권하지 말고 찬성 또는 반대로 분명하게 의사를 밝히라고 돼 있다. 그럼에도 이사회 의사록에 ‘기권’한 것으로 기재됐다면 어떻게 될까? 지난 5월 내린 대법원 판결은 ‘결의에 찬성한 것으로 추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로 이사회에서 기권만 했어도 그 사실이 의사록에 기재됐다면 찬성한 것이 아니라고 해석되고, 책임도 면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장차 책임질 결정을 두려워하는 이사들을 기권하도록 유도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사실관계를 보면, 카지노사업자인 갑(甲)주식회사 이사회는 이 회사의 주주이기도 한 을(乙)지방자치단체에 150억원을 기부하기로 결의했다. 본래 이 기부안의 타당성을 두고 이사회에서 의견 대립이 있었다. 가결하면 이사들이 업무상 배임혐의가 인정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재적 이사 15명 중 12명이 출석하고 출석 이사 중 7명은 찬성, 3명은 반대, 2명은 기권했다. 갑회사는 결의에 찬성 및 기권한 이사를 상대로 상법 제399조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이사회 결의에 따른 기부행위가 공익 증진에 기여하는 정도와 회사에 주는 이익이 크지 않고, 이 같은 사실들이 이사회 결의 당시 충분히 검토됐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위 결의에 찬성한 이사들은 이사의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주의의무’(선관주의의무)에 위배되는 행위를 했다고 보고 찬성한 이사의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했다.

다만, 원심은 기권한 2명도 찬성한 자로 분류했으나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하면서 이들은 찬성한 것으로 추정되지 않고, 손해배상책임도 없다며 사건을 원심법원에 돌려보냈다. 미국에서도 기권을 찬성으로 추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일을 이사회 회의석상에서만 기권했다고 면책되지는 않는다. 기권의 취지로 일관성 있게 행동했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사가 선관주의의무를 다한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가? 한국 회사법에는 그 기준이 없으나 한국 회사법의 뿌리인 미국 회사법에는 근거가 있다. 델라웨어주 일반회사법 제141조 (e)항은 ‘이사는 자신의 의무를 이행할 때 회사의 기록 및 회사의 집행임원(상임이사) 또는 회사가 선임한 자가 그 직업상 또는 전문가로서의 능력 범위 내의 사항에 관해 회사에 제시하거나 제출한 정보, 의견서, 보고서 또는 진술서를 선의로 신뢰했다면 충분히 보호받는다’고 규정한다. 이를 ‘신뢰의 항변(defence of reliance)’이라 한다. 전문가 또는 회사의 상임이사가 제출한 의견이나 보고서 등을 믿고 찬성했다면 임무를 게을리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선 갑회사의 사내 법무팀과 법무법인 등의 의견서에 기부안이 법령 위반 또는 선관주의의무 위반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가 표명됐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찬성결의에 가담했으니 변명의 여지없이 임무를 게을리한 것으로 판단된 것이다.

적어도 법률회사와 회계법인 등 전문가의 의견을 받아 선의로 결정한 사안에 대해서는 결의에 찬성한 이사를 보호해야 한다. 미국 판례에서 인정되고 독일 주식법에 명문으로 규정하고 있는 ‘경영판단원칙’도 한국 상법에는 없다. 경영판단원칙은 경영자가 기업 이익을 위해 신중하게 판단했다면 예측이 빗나가 기업에 손해가 발생한다 해도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경영판단의 원칙’과 ‘신뢰의 항변’을 상법에 명문으로 도입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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