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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사매거진] ‘발로 행하는 투표’의 시사점
 
2019-07-19 09:55:18

◆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책위 의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자본시장에서 거래가 일어나면 가격 정보가 시장에 전달된다. 그리고 이 정보는 금융시장에 참여하지 않는 경제 주체들에게도 상당히 유용하다. 예를 들어 어떤 회사의 주가가 일정 기간 동안 상승세를 보인다고 할 때 이는 해당 회사의 현재 실적이 좋아지고 있거나 미래에 좋은 성과를 보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진다든가 하는 부분이 반영된 결과일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 가격을 통해 해당 기업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낼 수 있다. 시장참여자들이 이 정보를 생성하기 위해 거래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거래의 결과 나타난 가격통계는 제3자에게 의미있는 정보를 제공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자본시장의 가격발견 기능이다.

부동산시장에서도 비슷한 개념이 있다. 바로 ‘발로 행하는 투표’라는 개념이다. 국가에 다양한 지역이 존재하고 각 지자체가 나름의 경쟁을 통해 다양한 정책 패키지를 제공하고 주민들이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어떤 지역의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경우, 이는 해당 지역이 가진 장점을 좋게 판단하고 이 지역으로 이주하려는 수요자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가격 상승은 수요자들의 투표 결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이다. A지역으로 이주하려는 수요자들은 A지역에 대해 표를 던진 셈이고 B지역으로 이주하려는 수요자들은 B지역에 표를 던진 셈이다. 많은 수요자가 생길수록 해당 지역 부동산 가격은 상승할 것이고 이는 결국 일종의 집단투표의 결과로 해석 가능하므로 이는 부동산시장이 제공하는 가격발견 기능에 비유할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최근 우리 경제에서 외국인 직접투자 동향은 신통치 않은 결과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우리 경제로 유입된 외국인 직접투자 자금 규모는 약 170억 달러였다. 최근 환율로 환산하면 약 20조원 정도다. 이와 달리 우리 기업의 해외 직접투자 규모는 약 500억 달러로서 60조원 정도다. 이런 결과는 우려스럽다. 우리 기업과 해외 기업을 포함한 많은 기업이 우리나라 기업 입지 조건에 대해 ‘발로 행하는 투표’를 시행한 결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일부 기업의 경우 미중 갈등의 영향권에서 자유롭고 기업 입지가 좋은 미국으로 투자를 늘리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인건비가 저렴한 신흥국이라면 몰라도 선진국으로 투자가 유출되는 것은 우리 경제가 신흥국과 선진국 양쪽 모두에 대해 상대적으로 입지 조건이 악화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남아있는 기업도 많지만 이 기회에 우리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돌아보아야 한다. 기업 입지 조건에 대한 종합평가 내지 투표결과가 나빠지고 있다는 것은 그동안 유지되던 우리의 국가경쟁력이 악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외환 분야에서도 문제는 악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비기축통화국이다. 달러로 대표되는 국제결제 통화를 확보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국가다. 예를 들어 우리의 연간 수입 원유량은 약 11억 배럴 수준인데, 이를 수입하려면 달러가 필요하다. 달러가 없으면 가장 중요한 에너지원이자 각종 화학제품의 원료가 되는 원유 수입이 불가능해진다. 수출기업의 최고의 낙수효과는 이들이 달러라는 돈을 벌어서 우리 경제로 들여온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렇게 유입된 달러를 중앙은행이 사들여서 쌓아놓은 것이 외환보유액이다. 달러의 ‘벌기’와 ‘쌓기’가 잘 되어야 우리 경제가 생존하고 발전한다. 1997년 외환위기도 기본적으로 달러 유동성 부족부터 시작된 위기였다.

그런데 지난 4월 경상수지가 6억60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해 가슴을 쓸어내리게 했다. 84개월 만의 적자였으니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히 5월에 49억5000만 달러 흑자로 돌아서기는 했지만 이는 지난해 5월 흑자폭(84억3000만 달러)에 비해 30억 달러 이상 줄어든 수준이다. 그리고 1월에서 5월까지의 누적 흑자 규모를 보면 약 155억 달러다. 전년 동기 흑자 규모는 약 214억 달러였다. 5월 수출의 전년 동월 대비 증가율은 -10.8%였고 5월 수입 증가율은 -1%였다. 이런 실적이 우리 경제의 많은 문제점을 축약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보아야 할 때이다.

최근 일본과의 통상마찰도 불안한 경제에 설상가상의 부정적 효과를 던지고 있다. 1997년 10월 당시 일본 은행들은 약 80억 달러의 대출을 급격하게 회수했다. 한국 경제에 위험신호가 들어온 것이 원인이었지만 일부에서는 당시 우리 정부와 일본 정부 간의 마찰도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지적이 있다. 경상수지가 적자인 상황에서 자본유출이 나타났으니 우리 경제에 부담은 상당했다. 외환위기가 일본 은행들의 자금 회수에서 시작됐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다. 따라서 일본의 최근 조치는 트럼프노믹스를 흉내 낸 아베의 돌발적 공격이기는 하지만 매우 뼈아프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원료에서 시작됐지만 금융으로까지 확산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기업 입지 조건과 외환 상황이 모두 나빠지고 있는데 통상마찰까지 심각해지면 우리 경제에 타격은 심각하다. 보다 근본적이고 과감한 조치가 필요한 상황이 도래하고 있다.

정부가 실행할 과제는 너무도 많지만 우선적으로 친노동적 정책 기조를 기업친화적인 정책기조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자본과 노동을 이분법적으로 보면 곤란하다. 이 둘이 서로 결합돼야 부가가치가 늘어나고 일자리가 만들어진다. 기업을 규제와 개혁의 대상으로 보면서 최저임금 인상에 주52시간 근무제 같은 지키기 힘든 규제를 강화하면 기업에 상당한 압박이 된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기업 입지 조건과 기업 생존 가능성을 고려해 수위조절과 완급조절이 필요하다. 필요하다고 이 규제 저 규제 모두 시행하면 우리 경제 내의 기업 입지 조건이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악화된다. 이렇게 되면 기업들은 우리 경제를 등지게 되고 우리 경제 내에 일자리는 줄어들고 없어진다. 일자리 관점에서 보면 기업친화적 정책이 진정한 친노동정책이 된다. 통상외교를 유연하게 추진해 해외 자본 유치를 강화하는 것도 좋은 흐름을 만들 수 있다. 해외 자본 유입 촉진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정책적 패키지를 시행하면 규제 완화와 자본 유치가 동시적으로 일어나면서 좋은 결과가 기대된다.

탈원전 정책도 그렇다. 한전의 이익이 7조원에서 마이너스(-) 1조원이 된 상황에서 탈원전을 밀어붙이는 것은 우리 경제를 고비용구조로 몰고 가는 것이다. 더구나 원유가 한방울도 나지 않는 나라에서 원전을 통한 에너지원 다양화와 에너지 안보는 필수적이다. 그동안 외국 자본들이 우리 경제를 선호하도록 만든 큰 장점 중 하나가 저렴한 전기료였다는 점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더구나 글로벌 표준을 스스로 만들어낼 정도로 오랫동안 쌓아올린 역량이 존재하는 분야가 원전산업이다. 원전마피아 운운하며 폄하할 일이 아니다. 잘 관리하고 발전시켜서 유용하게 이용해야 한다.

작금의 경제 상황은 많은 정책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많은 기업이 ‘발로 행하는 투표’로 우리에게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어떤 분야는 수정이 필요하고 어떤 분야는 유턴이 필요하다. 바꿀 것은 과감하게 빨리 바꾸는 용기가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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