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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우려한다.] 통권101호
 
2019-06-18 11:12:27
첨부 : 190618_brief.pdf  
Hansun Brief 통권101호  


양돈선 한반도선진화재단 독일연구포럼 대표

 

지금 정계는 독일 선거제도인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여부를 둘러싸고 여야 간에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다. 한 차례 국회에서 망치와 쇠지렛대까지 등장해 의원들의 막강한(?) 전투력이 살아있음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독일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승자독식(勝者獨食) 구조를 차단하고 사표(死票)를 최소화하여 민의(民意)를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제도다. 특히 군소 정당도 의회 진출이 가능하여 거대 양당의 양극화로 인한 폐해를 막을 수 있다. 따라서 매우 합리적인 선거제도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 제도를 우리나라에서 그대로 도입할 경우 독일에서와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오히려 각종 위험과 부작용만 유발할 가능성이 높다.

 

1. 의원 수 확대가 불가피하다

 

독일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도는 12표제로, 투표 용지 왼편에 지역구 후보자를 뽑는 제1투표, 오른 편에는 지지 정당에 투표하는 제2투표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의석 수 산정은 다소 복잡하다. 먼저, 2투표(정당 투표) 결과 정당별 득표율에 따라 의석수가 결정된다. 각 정당은 제1투표에서 최다 득표자에게 자리를 우선 배정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비례대표로 채운다.

 

그런데 실제로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정된 의석수보다 지역구에서 당선자를 더 많이 내는 경우가 발생한다. 이 한도 초과분을 초과의석(超過議席)이라고 하는 데, 당연히 정식 의석으로 인정된다. 현재 독일 연방의회 의원 정원은 598(지역구 299, 비례 299)인 데 실제 의원 수는 709명이다. 초과의석 111석 때문이다. 이러한 의원 수 증가는 세비 증가, 보좌관 증원, 사무실 차량비 등 부대비용 증가를 불러오며, 결국 그 부담이 국민에게 전가된다.

 

그러나 독일 국민들은 의석수를 문제 삼지 않는다. 독일 정치인들은 정치 소요비용도 적고 특권도 없다. 그러면서도 정직하고 청렴하다. 협치와 양보, 화합과 포용의 리더십으로 독일을 이끌고 있다. 이들은 국민들로부터 절대적인 신뢰와 존경을 받고 있다.독일의 정직성을 대표하는 인물 1016위까지가 정치인이다. 독일이 세계 최고브랜드 파워 국가로서의 명성을 이어가는 이유 중의 하나다.

 

반면에 한국 국회의원은 고비용 구조를 사수하고 있다. 현재도 독일 의원보다 돈을 많이 쓰고 있다. 급여는 비슷하나, 사무실 및 보좌진 비용 등은 한국 의원들이 더 많다. 양국의 경제력을 감안하면 사실상 훨씬 많은 돈을 쓰고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도 저효율·저신뢰의 혐오 집단으로 지탄받고 있다. 의석 수 확대에 대해 국민들의 이해를 얻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 독일과 한국 의원 급여 및 소요비용 비교 (2015, 만원) >

구 분

독일 연방 의원

한국 국회의원

월 급여

1,181

1,150

월 사무실 비용

555

770

월 보좌진 비용

2,082

30003,500

* 1유로 = 1,300

자료 : 조성복, 독일 정치, 우리의 대안, 2018.7, p.201.

 

2. 선거가 더 혼탁해지고 정치는 후퇴할 것

 

독일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의원 선출 절차가 투명하고 공개적이다. 권역()별로 후보 명단을 작성하여 주민들의 비밀투표를 통해 선출한다. 따라서 당 지도부가 공천권을 행사하지 않는 상향식 구조다. 권역별로 유능한 인사들이 선출되고 있으며, 금품 수수 등의 잡음이 없다.

 

반면에 한국의 경우 정당 지도부 또는 계파의 보스가 비례대표 공천권을 쥐고 있다. 그러다보니 비례대표 당초의 취지는 사라지고 당 권력자의 친위대나 전리품으로 전락했다. 선거지원 대가, 정치자금 조달, 논공행상 통로 등 추문과 비리의 온상이 되어 왔다. “비례대표 의원이 되려면 최소 몇 억이 필요하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흘러 다닌다. 비례대표 의원은 전()국구 의원이라는 비아냥도 들었다. 20195월에는 외식업중앙회장이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향해 노골적으로 비례대표 공천을 요구한 일이 있었다. 비례대표제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한다고 하여 특별히 정치 상황이 더 나아진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비례대표 의원수가 늘어나면서 오히려 공천권자와 함량 미달 후보들 간의 유착, 비리와 부패의 사슬이 더 공고화될 수 있다.

 

따라서 당 지도부가 먼저 공천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보스 중심의 밀실 공천, 계파 안배 등의 하향식 공천 관행을 벗어나 개방적이고 투명한 상향식 공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식견을 갖춘 전문가가 선출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여 이행해야 한다.

 

3. 지역 이기주의를 더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독일은 의원내각제 국가로서, 집권 여당이 과반수 의석을 얻지 못해도 총리를 정점으로 하여 여야가 합의를 통해서 연정(聯政)을 해나가는 구조다.

또한 독일은 분권형 연방제 국가로서 지역 이기주의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따라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운용하더라도 유권자들이 정당과 후보를 차별하여 투표를 하기 때문에(정당은 정책, 후보는 인물)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고 있다.

 

한국은 대통령제 국가다. 집권 여당이 과반수를 얻지 못한 여소야대 정국에서는 대립과 배제의 정치가 일상화하여 협치가 어려워지고, 대통령은 국정 동력을 확보하기가 어려워진다. 결국 극단으로 치달으면서 정국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게다가 한국은 지역이기주의가 심하다. 특정 정당이 특정 지역을 싹쓸이하는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누구나 그 지역에서 정당 공천만 받아 깃발만 꽂으면 무조건 당선되는 구조가 고착화되어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실시하면 지역 이기주의를 악용한 선거 담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 예컨대 그동안의 관행에 비추어 전라도에서는 유권자들이 후보와 정당 모두 민주당에 몰표를 줄 가능성이 높다.

 

결국 당선에 필요한 표 이상의 과잉표가 나온다. 이 과잉표를 정의당 등 군소 정당이 흡수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거대 야당의 진입을 막을 수 있는 요인이 생긴다. 결국 비례대표제 취지는 사라지고, 지역 갈등 구조는 더욱 고착화될 가능성이 우려된다.

 

4. 특권 포기, 신뢰 구축이 급선무


독일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독일 정치 제도와 조직중 하나의 작은 톱니바퀴다. 여러 다른 정치 제도와 서로 의지하고 맞물려 돌아가면서 선진 정치 동력을 창출하는 부분집합인 것이다. 또한 이러한 정치 제도는 정치 제도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독일의 역사 문화적 배경, 권력 구조, 정치인들의 수준 높은 리더십, 국민들의 정치인에 대한 신뢰 등이 녹아들어 있다.

 

척박한 우리 정치 토양에 연동형 비례대표제만 달랑 옮겨 심는다고 한들 성공을 예단하기 어렵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성공하려면 다른 정치 톱니바퀴들도 같이 갈아 끼워야 한다. 국회의원 세비를 삭감하고 면책특권과 불체포특권 최소화, 공천권 포기 등 대부분의 특권을 내려놓음으로써 선진 정치 동력의 전달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 국민들도 비로소 진정성을 믿고 신뢰를 보내게 될 것이다. 더불어 청렴과 정직, 협치와 화합의 정치력까지 보여야 선진 정치를 향한 필요충분조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자력으로 그렇게 할 가능성은 전무하다.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의 개인 면면을 보면 최고의 엘리트들이다. 문제를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利害)와 정략에 묶여서 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 국민들의 묵시적 동조가 가세한 것이다. 비리, 거짓말, 막말, 폭도 정치에 대해 국민들 책임이 없다 할 수 없다. 베네수웰라, 그리스, 남미 국가들을 보라. 과연 정치인들만 나무랄 수 있는가?

 

이제는 국민들이 정신을 차리고 정치인들을 감시하고 나무라고 조치를 해야 한다. 더 이상 얄팍한 술수나 공허한 포퓰리즘에 현혹되지 말고 이성적으로 나라의 미래를 걱정해야 한다. 바른 정치는 국민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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