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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신재민 법"을 제정하자] 통권81호
 
2019-01-04 14: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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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통권81호


박수영 한반도선진화재단 대표

 

기획재정부 국고국에 근무하다 퇴직한 신재민 전 사무관의 연이은 내부고발과 이에 대한 정치권의 공방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특히 신재민 사무관의 유서와 자살 시도로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기해년의 출발이 더욱 암울하게 느껴지고 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신 전 사무관의 내부고발은 두 가지 사안이었다. 첫 번째는 민간기업인 KT&G 사장과 서울신문 사장의 교체에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 세금이 예상보다 많이 걷혀서 빚을 낼 필요가 없는데도 국채를 추가로 발행함으로써 박근혜 정부의 국가부채 비율을 높이려 했다는 것이다.

 

첫 번째 사안이 직권남용에 해당하는지, 두 번째 사인이 국가재정법 또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인지 여부는 앞으로 언론과 국정조사를 통해 밝혀져야 하겠지만, 우선은 신 전 사무관의 행동에 대한 평가가 급선무라 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신 전 사무관에 대한 평가는 객관적이고 중립적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양극화되어 있다.

 

, 여당은 신 전 사무관의 내부고발이 노이즈 마케팅”(박지원 의원)이라거나 단기간에 큰돈을 벌기 위해”(손혜원 의원) 벌인 부도덕한 행위이며 공익제보라고 볼 이유가 하나도 없다고 보고 있다. 또 운영위원회에서 김종민 의원은 신 전 사무관의 동영상 마지막 부분인 돈을 벌려구요라고 발언한 부분을 반복해서 틀기도 했다.

 

반면에 야당은 민주화 운동 이후 최대의 양심선언”(김병준 비대위원장)이며, “거대권력에 맞서는 공익제보자인 신 전 사무관을 보호하는데 한치의 흠도 없도록 공익제보자 보호에 관한 법률 개정을 추진하겠다“(나경원 원내대표)고 밝혔다.

 

흔히 그래왔듯 우리나라 여야 정치권은 문제의 본질을 깊이 고민하기보다는 극단적인 정치적 대립부터 시작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일부 의원은 고발된 사건의 실체를 밝히기보다는 고발인의 개인적인 문제를 부각함으로써 쟁점을 흐리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문제점 그 자체가 아니라, 가리키는 손가락의 문제를 자꾸 얘기하는 것은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라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이미 남북전쟁 당시인 1863년부터 내부고발자 문제를 법제화했고, 이후 블랙 대법관과 화이트 대법관 간의 논쟁으로 유명한 펜타곤 보고서 사건과 영화화까지 진행된 스노든 내부고발 사건, 트럼프 대통령이 폐지를 공약한 토드-프랭크 법 등의 오랜 역사를 지닌 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의 내부고발자 문제는 그리 역사가 오래되지 않아 깊은 논의와 선례를 쌓아오지 못했다. 그렇기에 더욱 이번 신 전 사무관의 내부고발이 깊이있는 논의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우선, 여당이든 야당이든 내부고발이 광범위하게 인정되고 장려되어야 한다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일반적으로 야당일 때는 이리 주장하다가 여당이 되고 나면 180도 반대의견을 내는 것이 우리나라 정치권인데, 여야에 무관하게 우선 공익제보는 매우 한정적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잘못이 있으면 이를 공개하고 공개한 사람에게 보상을 해주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국가기관의 행위에 무작정 흠집이 나는 것을 용인해서는 안된다. 많은 선진국처럼 매우 한정적으로 특별한 조건을 충족할 경우에만 공익제보로 인정되어야 한다. 내부고발 자체가 비밀누설이든 문서절취든 위법한 행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고, 조그마한 잘못을 밝히려다 국가전체가 위기에 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 내부고발자의 위법한 행위가 위법성이 조각될 정도의 정당성을 갖는 것인지는 어떻게 판단되어야 할까? 학계에서는 다음 3가지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보고 있다. 첫째, ”최소한의 피해원칙이다. 아무리 공익을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필요이상으로 정부의 비밀이 공개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부 기밀문서 중 딱 한쪽만 문제가 되는 부분인데 전체 기밀문서를 공개함으로써 국가안보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져온다면, 이는 최소한 피해 원칙에 위배된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최후의 수단원칙이다. 조직내부의 정상적인 의사결정 과정에서 몇 차례의 개선 노력이나 건의를 한 다음 비밀을 공개해야지 그런 노력도 없이 바로 공개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 조직에는 국민권익위원회나 감사관실 같은 자정노력을 위한 기구가 있는데, 이런 기구를 통한 교정노력을 충분히 한 다음 그래도 시정되지 않을 때 비밀을 공개하는 것이 마땅하다.

 

마지막으로, ”편익비교의 원칙이다. 내부고발을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위법한 행위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공개된 비밀이 국가나 국민전체에 미치는 가치가 고발자의 위법행위 보다는 더 커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 번째 기준이 가장 중요한데, 내부고발자도 위법하긴 하지만 더 큰 국가의 위법을 막기 위해서 행해진 고발이어야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신재민 전 사무관의 내부고발은 최소한의 피해원칙과 편익비교원칙에는 부합해 보인다. 직무상 알게 된 많은 비밀을 폭로한 것이 아니라 필요최소한의 내용을 공개하고 있으며, 그의 폭로로 정부 의사결정의 문제점을 알게 된 국민의 알권리 충족이 더 큰 이익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신 전 사무관이 내부의 감사관실이나 국민권익위원회 등 관련기관에 호소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최후의 수단인지는 논란이 될 수 있으나, 수차례 경제부총리 등 상사에게 보고를 했고, 상대가 감사관실이나 국민권익위원회의 상위기관인 청와대였다는 점과 권익위를 통한 호소가 필요하다는 사실 자체를 많은 공무원들이 모르고 있다는 현실을 감안하면, 그의 행위의 정당성이 인정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2011년에 제정된 공익신고자보호법이 기본법이고 2001년에 제정된 부패방지 및 국민권익위원회의 설치에 관한 법률에 약간의 관련조항이 들어있는 상태다. 기본법인 공익신고자보호법에서는 공익신고의 대상이 건강, 안전, 환경, 소비자보호, 공정경쟁 등 5가지에 한정되어 있고, 이들 5가지 분야의 284개 법령위반 행위가 있을 때만 한정적으로 공익신고로 간주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횡령, 배임, 조세포탈 같은 민간기업 영역의 부도덕하고 위법적인 행위가 포함되지 않는 문제가 있다. 더욱이 이번 신재민 전 사무관의 경우처럼 국고에 부담을 주거나 국기문란 등 반국가적 행위에 대한 고발은 법령이 정한 공익신고의 대상이 되지 않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신재민 전 사무관의 내부고발에 관해서 그 사실여부를 밝히는 작업과는 별도로, 내부고발 및 공익신고에 대한 제도적 개선방향을 공론화하여 법령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5개분야 284개 법령 위반으로 한정하기보다는 고발행위의 정당성을 판단하는 기준을 정립하여 판단하도록 하는 것과, 공익제보 여부가 확정될 때까지 해고나 좌천, 기소 등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기관장이나 고용주를 처벌하는 규정을 신설하는 등 내부고발자에 대한 구체적인 보호 조치가 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 정치권과 학계의 심도있는 논의를 바탕으로 기존의 공익신고자보호법의 전부개정 또는 더 바람직하게는 새로운 법(가칭 신재민 법)을 제정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이번 기회에 영국처럼 기본법만 제정할 것인지 미국처럼 개별법에 관련규정을 명시하여 공익제보의 범위와 제보자 보호를 분명히 할 것인지도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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