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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동맹 허물기, 무엇 위한 파괴인가
 
2019-09-04 09:32:14

◆ 이용준 전 외교부 북핵담당대사는 한반도선진화재단 대외정책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소미아 파기 이은 독도 훈련  
의도 뭐든 對外 메시지는 명확  
美 동아시아 안보 이익 정조준 

한국의 외교·경제 손실 불가피  
미군 주둔비 전액 요구할 근거  
文정부 지향점, 中인가 北인가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에 사형선고가 내려졌다. 그간 반일(反日) 민족주의의 소용돌이 속에 끊임없이 상처 입으면서도 외줄에 위태롭게 매달려 연명하던 3국 안보협력은 한국 정부가 일본을 향해 휘두른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파기의 일격을 맞고 쓰러졌다. 그것만으론 부족했는지, 한국 정부는 난데없는 독도방어훈련으로 그 잔해 위에 커다란 대못까지 박았다.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를 폐기한 본래 의도가 무엇이든 이는 불가피하게 미국의 세계 전략과 동아시아 안보 이익을 정조준하고 있다. 그에 대한 미국의 격한 반응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한·미·일 삼각 협력은 한·미 동맹과 그것을 토대로 한 부수적 다자협력체가 아니라, 미국이 동북아 안보를 유지하는 방어체제의 핵심 그 자체였다. 유럽 안보에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차지하는 역할에 비견될 만한 것이었다. 그 때문에 이는 이 지역의 현상 타파를 노리는 중국과 북한의 최우선 타도 대상이었고, 그들은 한국 정부 덕에 수십 년 숙원을 이뤘다. 

외교 당국이 그걸 모르고 단지 대일 보복 차원에서 지소미아를 파기했다면 무지한 만용이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나, 알면서도 그랬다면 더 심각한 문제다. 이는 그간 반일 민족주의로 교묘히 포장됐던 좌경 반미주의가 이제 숨겨진 민낯을 스스로 드러내기 시작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실 지소미아 그 자체는 없으면 불편하긴 하나, 국가안보의 핵심 요소는 아니다. 이 사안의 중요성은 그것이 내포하는 한국 정부의 일관된 정치적 지향성과 이념적 정체성, 또 그것이 미국에 보내는 의미심장한 메시지에 있다.

한국 정부의 애초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그런 선택이 미국에 주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미국은 이를 통해 그들이 동맹국 한국에 대해 가져온 의구심이 단순한 기우가 아니었음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또, 한국 정부가 한·일 관계 악화와 한·미·일 삼각 안보협력 해체를 통해 한·미 동맹 와해, 친 중국 진영으로의 전향, 그리고 궁극적으로 한반도 분단 체제의 현상 타파로 가고 있을지 모른다는 기존의 의혹이 미국 조야에서 더 설득력을 얻게 됐을 것이다. 한국 정부는 지소미아 파기 결정 후 그에 대한 미국의 거부 반응에 공개적으로 항의하고 26개 주한미군 기지 조기 반환을 요구하는 등 미국에 대한 노골적 거부 반응을 숨기지 않았다. 이는 미국에, 이제 더는 동맹국 한국에 최소한의 의리나 예의를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인식을 주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이에 따른 미국의 대응 조치가 무엇이 되든, 한국은 상당한 외교적·경제적 손실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은 한국의 동맹 이탈에 따른 공백을 메우려 미·일 동맹을 한층 강화하고 일본의 재무장을 더 강력히 지원하게 될 것이며, 한·일 쟁점 현안에 있어서도 점차 동맹국 일본을 두둔해 나갈 것이다. 북한과 거래한 한국 기업에 대해 세컨더리 보이콧의 칼을 뽑을 수도 있고, 주한미군의 대폭 감축을 통해 외환시장과 대외신인도에 타격을 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 정부의 동맹 파괴 행위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가장 먼저,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을 통해 구체화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이미 주한미군 유지비 총액에 해당하는 약 6조 원의 방위비 부담을 요청해 온 것으로 알려진다. 한국이 동맹국의 의무를 무시하면서 굳이 주한미군의 계속 주둔을 원한다면 마땅히 주둔비용 전액을 ‘용병료’로 지불하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한국 정부가 그 요구를 수용할 가능성은 없을 테니, 이는 결국 미국이 주한미군의 대폭 감축을 정당화하는 명분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크다.

지금 70년 한반도 체제가 요동치고 있다. 뭔가 새로운 체제를 창조하려고 기존 체제를 파괴하려는 문재인 정부의 의도가 명확해지고,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의 일각이 가시화하고 있다. 헤르만 헤세는 소설 ‘데미안’에서 창조를 위한 파괴를 말했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문 정부가 한·미 동맹의 폐허 위에 탄생시키려는 새는 어느 신을 향해 날아갈 것인가? 미국의 적(敵)인 중국일까, 아니면 한국의 적인 북한일까? 그것이 무엇이든 정부는 이를 사전에 국민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 동의를 얻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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