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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ILO 협약 先비준 추진, 대혼란 부른다
 
2019-05-27 16:10:08

◆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경제질서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8개 중 한국이 비준하지 않은 4개 협약 가운데 3개 협약의 비준동의 절차에 들어간다고 최근 밝혔다. 산업계는 이 3개 협약의 내용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여러 번 표명했다. 가뜩이나 노조 쪽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 협약 비준 시 ‘뒤집힌’ 운동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노동법은 일본, 미국, 유럽 국가 등에 비해 강하게 근로자를 보호하고 있다. 다른 나라와는 달리 파업 시 기업은 대체근로자를 고용할 수 없어 신규 채용, 하도급이 금지된다. 파업이 끝날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한다. 하루에도 수억 원 또는 수백억 원의 손실이 발생할 수 있어 기업주는 속이 새까맣게 탄다. 다른 나라에서는 금지되는 사업장 점거파업도 허용돼 걸핏하면 사장실과 공장 생산 라인부터 점거하고 기물 파괴, 임원 폭행, 영업 방해를 일삼는다. 부당노동행위라 하여 사업주를 형사처벌하는 사례도 세계적으로 희귀한 제재 방식이다. 단체협약을 체결해도 유효기간은 2년뿐이다. 이런 것들이 기울어진 운동장의 증거다.

정부가 비준하려는 3개 협약 중 ‘결사의 자유와 단결권 보호’에 관한 제87호에 따르면 모든 근로자는 스스로 단체를 설립·가입할 수 있다. 전교조가 합법화되고, 고위공무원노조 설립·가입이 가능해진다. 기업 현장의 노사 관계에서도 근로자 신분이 아닌 해고자·실업자가 노조에 가입할 수 있게 된다. ‘단결권과 단체교섭 보장’에 관한 제98호는 노조원이라는 이유로 차별해선 안 된다는 내용이다.

이와 관련해 노동계는 하청업체의 노조가 원청에 대한 직접 교섭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을 한다. 어렵게 종전 노조전임자 급여 지원 관행을 없애고 근로시간면제 제도로 개선해 제도가 완전히 정착됐는데 이것도 뒤집힐 판이다. 전업 노조 활동가를 양산할 우려도 있다. ‘강제노동금지’에 관한 제29호는 모든 형태의 비자발적 노동을 금지한다. 이는 현행 사회복무요원 등 보충역 제도와 충돌한다. 

협약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노조법, 노동관계조정법, 공무원노조법, 교원노조법, 병역법, 형법 등이 개정돼야 한다. 먼저, 이들 법률을 세심하게 정비한 다음 협약에 가입하는 게 순리다. 헌법에 의해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헌법 제6조 제1항) 협약은 조약의 일종이다. 협약은 바로 국내법인 것이다. 국내법을 정비하지 않은 채 협약에 가입하면 같은 사안에 대해 내용이 서로 모순되는 법규가 있게 되고, 이때 어느 것이 적용되는지를 두고 혼란이 발생한다. 

본래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논의를 거쳐 협약을 비준하기로 했으나, 경영계의 입장이 거의 반영되지 않는 등 위원회가 파행을 거듭하다 결국 합의는 불발됐다. 지난 20일 위원회가 논의 종료를 공식화하자 바로 이틀 뒤 정부는 협약 비준 카드를 꺼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던 게 아닌지 의심이 가는 부분이다. 정부가 관련 국내법을 먼저 개정하고 나중에 국회 비준동의를 받겠다는 ‘선(先) 입법, 후(後) 비준’ 방침을 버린 이유가 궁금하다. 협약은 비준동의서를 ILO에 기탁한 때로부터 1년이 지나야 국내법적 효력이 발생한다. 법률 개정을 동시에 추진한다고 하지만 덜컥 비준동의서부터 제출해 놓고 법률 개정은 5∼6년이 지나도 이뤄지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업계의 혼란이 뻔히 보이는데, 무엇에 쫓기고 있는가. 법률의 생명은 법적 안정성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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