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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경제] [전문가 기고] 산안법 포비아(공포) 한국 제조업을 강타(强打)하다
 
2019-05-09 14:04:38

◆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경제질서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기고=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한국은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다. 한류(韓流)나 K-Pop처럼 문화, 예술이나 천연자원 또는 서비스도 수출할 수는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물건 수출의 중요성은 조금도 감소하지는 않는다. 제조업 생산성은 타 산업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향상되는 경향이 있다. 혁신은 제조업에서 더 자주 일어나며, 제조업은 국가 경제의 성장 동력이다. 무엇보다 인류가 육체를 가지는 한 제조업에 대한 수요는 시간이 간다고 줄어들지도 않는다. 역사적으로 부자 나라는 제조업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나라들이고 가난한 나라는 제조업 분야가 보잘 것 없고 물건이 부족한 나라였다. 

최근 제조업 분야에서 해외 생산 비중이 급격하게 늘었다. 기업을 옥죄는 법률들이 마구 쏟아지던 때부터 이미 학자들은 기업들의 엑소더스(exodus) 사태를 예고했었다. 작년 해외투자는 55조 원으로 9%가 늘어 사상 최대였다. 반면, 국내 설비투자는 큰 폭으로 줄어 2019년 1분기(1~3월) 외환위기 이후 21년 만에 최저치인 -10.8%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말 국회는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을 개정했고, 정부는 시행령을 마련 중이다. 이 법률 개정은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인명사고가 계기가 됐다. 이 사고로 위험한 작업은 하청업체에 외주(外注)하는 형태의 작업방식이 크게 문제됐다. ‘죽음의 외주화’, ‘위험의 외주화’라는 프레임에 갇힌 국회는 개정 논의를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산안법을 졸속 개정했다. 시행은 내년 1월 16일부터다.

대부분의 인명사고는 제조업에서 발생하는 만큼 개정 법률은 제조업계를 크게 긴장시키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고용부 장관의 작업 중지 명령이다. 중대 재해 발생 때 작업 중지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구체적인 기준은 시행령이나 규칙에 정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 논의되고 있는 시행령 개정안에는 이에 관한 규정이 아예 없다. 기업인들은 작업 중지 명령 남발을 우려한다. 반면 작업 중지 명령을 해제하는 조건은 매우 까다롭다. 해제를 요청하려면 중대 재해와 관련된 작업 근로자 과반수의 의견을 들어야 하고, 요청 후 4일 내 심의위원회를 열어서 심의해야 한다. 의견 청취 절차 자체가 노사 갈등을 불러올 수 있고, 심의가 끝날 때까지 공장은 쉬어야 한다. 작업 중지 명령 위반 시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모 반도체 공장은 전력수급 중단을 염려해 자체 발전소를 짓는 형편이다. 하루 공장가동 중단은 수백억 원의 손해를 일으킨다. 이 돈은 그냥 공중에 사라지는 돈이다. 

원청 사업주가 책임져야 할 범위도 사업장 전체는 물론 사업장 외부의 위험 작업이 이뤄지는 장소까지로 확대됐다. 사업장 외부의 위험에 대해서까지 원청사업자가 책임을 지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으므로 이 규정은 ‘자기 책임의 원칙’에서 벗어나 원천 무효다. 사업장의 대표자와 원청업체 대표자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 위반에 대한 형사 처벌 규정도 대폭 강화됐다. 기업 대표자는 언제든 갑자기 감옥에 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는 처지다. 화학물질 비공개는 고용부의 사전승인을 얻어야 한다는 규정도 영업 비밀을 대놓고 공개하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화학물질을 많이 쓰는 반도체업계와 화학업계는 초비상이다. 

1963년 이병철 한국경제인협회(현 전경련) 회장은 향후 10년간 23억 달러의 차관을 도입해 1000개의 대규모 공장을 세우자고 제안했다. 농업 외에는 산업이란 것이 아무것도 없던 당시로는 놀라운 제안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이 개발정책을 전폭 수용했다. 1965년 1월 박 대통령은 국회 연두교서에서 수출을 ‘경제활동의 생명’으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역사 이래 한국 제조업의 첫 탄생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국민이 잘살게 되고 중산층이 늘면 독재정권은 무너진다. 박 대통령이 독재자였다면 그는 무너지는 길을 스스로 택했다. 반면,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와 마두로는 자신을 쫓아내지 못하도록 국민을 빈곤 속에 처박아 두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부의 중요한 가능 중 하나는 규칙을 만들고 심판을 하는 룰 메이커(rule maker) 기능이다. 경기 규칙을 정할 때는 경기장의 주인공인 선수(기업)들의 의견도 충분히 들어 봐야 한다. 1965년 이후 중단 없이 발전해 온 한국 제조업을 망칠 셈이 아니라면 정부는 법 시행 전에 업계의 의견을 제대로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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