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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제재 유지되면 시간은 북한 편 아니다
 
2019-04-23 09:39:33

◆ 이용준 제19대 주이탈리아대한민국대사관 대사는 한반도선진화재단 대외정책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람이든 국가 조직이든, 어떤 커다란 어려움에 봉착하면 과거에 어떤 방식으로 이를 극복하고 재기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는지를 생각해 내고 그 선례를 답습한다. 북한의 경우, 1994년의 1차와 2002년의 2차 북핵 위기를 포함해 지난 30여 년간의 다양한 위기 극복 과정에서 축적된 불멸의 성공 방정식이 있다. 그것은 협상 상대방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강경 대응을 함으로써 상대에게 최악의 파국에 대한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고 대응 의지를 약화시키는 전략이었다.

어떤 때는, 전반적 상황이 북한에 크게 불리해 마땅히 자숙하고 약세를 보일 것으로 추정되던 시점에 북한은 예상 밖의 정반대 초강경 조치를 들고나오곤 했다. 그런 역발상 전술에 대해 미국 외교관들은 ‘벼랑끝 전술’이라 이름 붙였다. 그런 무모한 전략이 과연 통할까 싶었지만, 신기하게도 대부분 성공을 거뒀다. 북한이 국면 전환을 위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렀던 강경 조치들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핵실험,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 대남 군사 조치 위협 등이었고, 그 메뉴에는 아직도 거의 변함없다.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지난 30년의 북한 외교 행태를 지켜봐 온 국제사회에서 이는 더 이상 신기한 일도 놀라운 일도 아니다. 그래서 지난 2월 28일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되자마자 세계 언론들은 북한이 조만간 핵실험이나 장거리미사일 실험을 할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과 국제사회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하나는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를 할 의사가 없다는 새삼스러운 진실이고, 다른 하나는 대북 제재가 북한에 예상보다 큰 고통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향후 미·북의 협상 구도는 사실상 정해졌다. 미국은 북한의 전면 비핵화가 이뤄질 때까지 유일한 대북 압박 수단인 제재 조치를 해제하거나 완화하지 않겠다고 확인했다. 이로 인해 한국 정부가 추구하는 출구전략은 설 땅을 찾기 쉽지 않은 상태다. 북한은 어떻게든 핵을 포기하지 않은 채 제재 해제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며, 과거 명성을 날린 전가의 보도들이 대거 동원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행보가 심상찮다. 그의 공군부대 시찰, 전술유도무기 사격 시찰 공개, 북·러 정상회담 발표 등은 미국에 대한 무언의 압박이 시작된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이 이에 대해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면 궁극적으론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까지 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으로서는 제재 해제를 위해 그 외에는 마땅히 동원할 만한 대미 압박 수단이 없는 상황이나, 그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핵실험과 미사일 시험 재개는 미국의 추가 제재를 유발할 게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대북 추가 제재를 하지 않겠다는 지난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발언은 역으로 추가 제재 조치 가능성에 대한 대북 경고의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현재의 교착 국면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북한은 핵보유국으로서의 위치를 더욱 굳건히 기정사실화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반면에 심각한 경제난에 따른 체제 동요의 위험성이 점차 커질 수밖에 없어, 향후 북한이 어떤 선택을 할지 주목된다. 이제 시간은 더 이상 일방적으로 북한의 편이 아니다. 북한의 핵 포기 거부와 미국의 제재 해제 거부가 장기간 계속된다면, 북한의 선택지는 핵을 안고 몰락할 것인지, 아니면 후원국들의 도움으로 근근이 생존할 것인지의 두 갈래 길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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