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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상장사 주주제안 요건, 형평성 잃은 법원 판단
 
2019-03-11 11:52:51

◆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경제질서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소수주주 보호 명분에 사로잡혀
주주제안권 남용 방지란, 상법 취지 무시한 법원 결정

규정에 반하는 튀는 판결로
상장사 경영 압박하면 법적 안정성·형평성 잃게 될 것"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지난달 말 사모펀드 KCGI의 주주제안 자격을 인정해 KCGI가 한진칼을 상대로 한 의안상정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다. 신청 내용은 자신이 추천하는 감사·사외이사 선임, 대표이사 사장 교체 및 임원 보수한도 축소 등이다. 한진칼은 KCGI 측의 지분 보유기간이 6개월이 되지 않아 주주제안 자격이 없다고 주장해왔다.

상법은 주주 감독권을 보장하되 무분별한 경영 관여를 차단하기 위해 엄격한 요건하에서만 주주제안권을 인정한다. 비상장회사의 경우 의결권 있는 발행주식 총수의 3% 이상을 소유한 주주만이 이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했다(일반규정). 대규모 상장회사의 경우엔 3% 요건을 갖추기 어려울 것이므로 1% 이상(자본금 1000억원 이상은 0.5%, 금융회사는 0.1%)에 해당하는 주식을 ‘6개월 전부터 계속하여 보유한 자’가 행사할 수 있게 했다(특칙).

그런데 이 법원은 상장회사라도 비상장회사의 요건인 3% 이상을 보유한 주주는 ‘6개월 전부터 계속 보유’하지 않더라도 주주제안 자격이 있다고 판단했다. 상장회사 특례규정의 입법 취지가 요건을 완화해 소수 주주를 보호하는 데 있으므로 ‘3% 이상’이든, ‘1% 이상이면서 6개월 초과 보유’든 둘 중 하나를 충족하면 된다고 봤다(선택적 적용).


주식매매가 자유로운 상장회사의 경우 선택적 적용은 문제가 많다. 이에 본래 증권거래법에 있던 이 특칙이 2009년 상법으로 이관되면서 입법적으로 해결됐다. 2009년 개정 상법 입법예고서에는 ‘상장회사의 주식을 6개월 이상 보유한 자만 행사할 수 있도록 하여 남용을 예방한다’고 명시했다.

그리고 상법 제542조의 2에 ‘이 절(상장회사 특칙을 정한 상법 제4장 제13절)은 이 장(제4장 주식회사) 다른 절에 우선하여 적용한다’고 규정해 상장회사에 관해서는 특칙이 ‘우선’ 적용된다는 것을 명문화했다(특칙 적용). 선택적 적용을 의도했다면 개정 상법에 굳이 이 조항을 신설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2015년 서울고등법원 결정 이후 최근까지 10건 이상의 판례가 특칙 적용설을 따랐다.

이번 결정은 느닷없다. 소수 주주 보호라는 관념에 사로잡혀 개정 상법의 입법 취지를 무시했다. 법원은 ‘우선’이라는 글자가 있더라도 ‘일반규정’이 적용될 수 있다는 이해하기 힘든 논리를 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나머지는 자연히 탈락하는 게 당연한데 무슨 말장난을 하자는 것인가.

일본에선 이사회를 두지 않은(1인 회사 등 소규모 회사) ‘주식양도 제한회사’는 단독주주가 주주제안을 할 수 있지만, 상장·비상장회사를 가리지 않고 이사회를 두고 있으면서 주식양도 제한이 없는 모든 회사(이른바 공개회사)는 1% 이상 또는 300개 이상의 의결권(일본은 단원주제도가 있어 100주에 1의결권을 주는 식이다)을 ‘6개월 전부터 보유’하는 주주에 한해 총회 ‘8주 전’(한국은 6주 전)까지 행사해야 한다. 예외는 없다. 오히려 작년에 주주제안권 행사 의안 수를 제한하는 등 요건을 더 강화한 개정시안이 제출됐다.

미국은 더 어렵다. 미국 상장회사는 주주가 1% 이상 또는 2000달러 이상 주식을 주총 전 ‘1년 이상 보유’했어야 하며, 정기총회 기준으로 전년도 정기총회 부속서류 공시일 ‘120일 전’에 주주제안을 해야 하고, 제안자는 한 건만 제안할 수 있으며, 주주제안이 가결됐더라도 구속력이 낮아 이사회가 이를 이행할 의무가 없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펀드에서 전문투자형과 경영참여형의 구분을 없애고 사모펀드는 모두 무제한의 주식 취득과 무제한의 의결권 행사를 허용하기로 했다. 대형 펀드들이 소규모 코스닥 상장법인 주식 3%를 취득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6개월 보유 요건을 무시하면 6주 전 갑자기 주식을 대량 취득해 경영진 교체, 배당 확대 등 경영진을 압박할 가능성이 아주 커진다.

요즘 판사에 따라 튀는 판결이 부쩍 많아졌다. 한쪽만의 입법 취지를 내세우며 명문(明文)의 규정에 반하는 판결을 내린다면 법적 안정성은 물론 형평성까지 잃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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