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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초과세입을 대하는 자세 : 한국 vs 싱가포르
 
2019-02-18 09:37:35

◆ 박수영 한반도선진화재단 대표는 현재 아주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초빙교수로 활동 중입니다. 

 

정부 예산을 편성할 때, 쓸 돈을 먼저 정하고 그만큼 걷을 것인지(양출제입), 걷을 수 있는 돈을 추정해보고 그 범위 내에서 쓸 것인지(양입제출)에 대한 논쟁이 있다. 전통적 재정학에서는 양출제입이 원칙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나 현장의 예산편성에서는 세수추계를 먼저 하고 그 범위 내에서 예산을 편성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꼭 필요한 사업이 있다면 국채를 발행해서라도 추진하겠지만 우선은 세입 범위 내에서 편성하는 것이 정상이다. 재정건전성 원칙을 천명한 국가재정법 제16조나, 세출재원은 원칙적으로 세입 범위 내로 한다고 규정한 같은 법 제18조의 입법 취지도 그렇다.

기획재정부가 2018년도 세입·세출 결과를 발표한 뒤 논란이 많다. 작년도 세입은 293조6000억원으로 예산편성 당시 추계했던 268조2000억원보다 무려 25조4000억원이 더 걷혔다고 한다. 초과세입이 역대 최대 규모이다 보니 정부의 세수추계 모형이 잘못되었다느니 기재부가 고의로 보수적인 추계를 하였다느니 하는 등의 비판이 일고 있다. 

세입추계를 보수적으로 하는 것이 반드시 나쁜 건 아니다. 실은 너무 적극적으로 추계를 했다가 예상보다 세금이 적게 걷혀서 감액추경을 하거나 국채를 긴급히 발행하는 것보다는 낫다. 감액추경은 이미 지급하기로 했던 예산을 연도 중에 깎는 일이어서 강한 반발을 초래할 수 있고, 국채발행은 흔들리는 재정건전성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어 그 어느 것도 바람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초과세입은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 국가재정법이 규정한 대로 국채를 갚는 데 우선적으로 쓴다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정치적 목적으로 결정된 사업에 우선적으로 쓴다면 그건 비난받아 마땅한 일이 될 것이다. 24조원에 달하는 예비타당성조사 면제와 같은 결정이 대표적인 예다. 면제사업 중 새만금국제공항 건설은 불과 1시간 거리에 있는 무안국제공항이 적자를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추가로 공항을 건설하는 대표적 중복 투자다. 새만금공항이 건설되면 무안공항의 적자폭은 당연히 더 커질 것이다. 설마 그렇지는 않겠지만 2018년도 초과세수가 25조원에 달할 것을 알고 있었던 예산당국이 부담 없이 24조원의 타당성 검토 없는 사업을 결정했다면, 그런 결정이야말로 초과세수 운용의 가장 우려스러운 측면이 될 것이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예타를 통과할 수 없는 타당성이 부족한 사업에 초과세수를 쓰고 있다면, 재정운용 정책의 근본적인 반성과 전환이 필요하다. 그중 한 방법은 세금을 낸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터무니없는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선진국의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싱가포르의 경우 초과세수를 국민에게 돌려주는 SG 보너스(SG Bonus)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싱가포르 정부는 편성 당시 국민에게 약속한 당초 예산 범위 내에서 정부를 운영하면 되는 것이고, 초과세입은 기업이나 국민이 열심히 일해서 생긴 예상외의 수입이므로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국가주의적일 것 같은 싱가포르 정부가 의외로, 순익이 많이 나면 주주배당을 실시하는 기업가적 방식을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SG 보너스 운용 시 이전소득 효과도 감안하고 있다. 초과세입을 배분할 때 연 소득 2만8000달러 이하인 저소득층에는 연 소득 10만달러 이상인 고소득층보다 3배를 더 돌려주고 있는 것이다. 


최근 우리나라는 돈은 정부가 써야 더 잘 쓴다는 정부만능주의 사고에 빠져 있다. 법령과 원칙을 어기면서 불요불급한 사업에 쓰기보다는 법령에 충실하게 국채를 우선적으로 갚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려면 차라리 세금을 낸 국민에게 돌려주는 게 낫다. 싱가포르처럼 초과세입 전체가 아닌 일정 부분만 돌려주어도 세금 때문에 허리가 휜다는 국민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을 것이다. 역시 싱가포르처럼 저소득층에 더 많이 분배함으로써 이전소득 효과까지 노려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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