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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권력과 기업, 그리고 국민연금
 
2019-01-25 17:17:13

◆한반도선진화재단 경제선진화연구회장으로 활동 중인 양준모 연세대 교수의 서울경제 칼럼입니다. 


권력자에게 돈은 권력을 완성하는 도구다. 정경유착의 부작용은 역사가 증명했다. 만약 기업이 권력의 시녀가 된다면 더 큰 부작용이 발생한다. 히틀러가 국가사회주의를 실현했던 방법은 경종을 울린다. 히틀러는 독일노동전선(German Labor Front)을 통해 노동계를 장악하고 시민단체도 통합해 통제했다. 정부가 보유한 철강·광산·철도 등 기간산업의 기업들, 그리고 은행 등의 주식을 매각해 각 회사의 주식보유 비중을 25% 이하로 낮췄다. 민영화를 추진한 것처럼 보이지만 기업들을 자신의 시녀로 만드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후 히틀러는 통제받지 않는 권력으로 인류에 대재앙을 안겼다. 지금 대한민국의 정부는 기업을 권력의 시녀로 만들겠다고 선언하는 것인가.

국민연금기금은 국민에게 자금을 강제로 갹출해 연금을 지급할 목적으로 모아놓은 돈이다. 기금운용의 목적은 법률로 정해져 있다. 기금운용의 책임자는 보건복지부 장관이다.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하겠다고 선언한다면 이는 바로 정부가 기업경영에 관여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이 없다.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국민연금은 경영권을 가질 수 없다. 정부가 수익을 증대하기 위해 기금을 운용할 수는 있어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더욱이 기금을 이용해 사적 자치의 영역을 침해해 경영에 간섭할 수 없다. 

국민연금은 국민으로부터 경영에 개입할 권한을 위임받지 않았다. 법적으로 명백하고 실질적으로도 그렇다. 모든 권한을 위임받기 위해서는 국민 뜻과 달리 경영에 개입했을 때, 국민이 수탁자를 해임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해 10월 말까지 국민연금 기금운용 수익률이 마이너스라고 한다. 국민연금기금은 적어도 물가상승률 이상의 수익을 내도록 규정돼 있다. 정해진 규정을 지키지 못했다. 누군가는 책임져야 한다. 현재까지 사과 한마디 없다. 과연 국민연금이 국민의 성실한 수탁자인가.

국민연금공단에는 투명하게 개별 기업의 경영상황을 구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조직과 인원이 없다.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는 개별 주식에 대한 의사결정을 할 수 없다.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의 법적 근거는 모호하다. 국민이 권한을 위임한 적도 없다. 국민은 정부에 기금 수익성 제고만을 위임했다.

국민연금과 관련된 각종 위원회의 전문성 문제는 해묵은 과제다. 개별 기업의 경영판단 능력은 고사하고 재무적 투자자로서의 역량도 미흡하다. 독립성도 없고 견제의 지배구조도 없다. 정치적으로 제기된 문제가 기금운용 과정에서 토의되고 있다. 일부에서 주장하고 있는 대한항공과 한진칼에 대한 개입 문제가 바로 국민연금이 정치적으로 오염됐다는 것을 증명한다.  

‘물컵 사건’은 무혐의 처리된 문제다. 국민은 주가 하락으로 고통받았다. 현재 주식은 다시 반등했다. 형법으로 개인들을 규율하는 문제와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문제는 별개의 차원이다. 일부 시민단체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이사들은 교체돼야 하는가. 이제 사기업에서도 낙하산 인사가 채용되는가. 국가권력으로 갹출한 돈이 정치논리로 사용될 수는 없다. 

경영 개입이 허용되면 대리인 문제로 인해 사회적 갈등이 폭증된다. 경영권과 주식가격은 국민의 재산과 직접 관련된 사항이다. 국민의 재산이 정치적 흥정의 대상이 된다. 권력은 전리품을 챙긴다.

개별 기업의 경영 개입은 관치다. 연금에 의한 광범위한 관치는 연금사회주의를 의미한다. 경영 개입은 규정으로 규율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의 자의적 판단을 허용하는 것이다. 자의적으로 정치권력이 기업경영에 개입하게 되면 그 결과는 참담할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은 이미 많은 기업들의 최대주주가 됐다. 정치권력을 얻게 되면 기업까지 장악하게 되는 세상을 만들 것인가. 논의는 허울 좋은 명분으로 시작됐다. 그 뒤에 숨겨진 작동원리를 깨달아야 한다. ‘신재민 사태’로 민간기업의 인사 개입 의혹이 제기됐다. 공기업에서 정치적 일감 몰아주기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권력의 개입으로 이런 일들이 일상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국민연금기금으로 경영에 개입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정부도 헌법과 국민연금법이 명시한 의무를 다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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