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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크고 무능한 정부를 우려함
 
2018-11-22 15:10:57

◆ 박수영 한반도선진화재단 대표는 현재 아주대학교 공공정책대학원 초빙교수로 활동 중입니다. 

 

가장 바람직한 정부가 `작고 유능한 정부`라는 데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학자들은 물론이고 언론이나 국민도 동의할 것이다.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해내는 정부가 적은 수의 공무원들에 의해 운영된다면, 필요한 세금을 적게 거두어도 될 것이고 그만큼 가계는 가족을 위해 쓸 돈, 즉 가처분소득이 늘어나게 된다. 

반대로 최악의 정부는 `크고 무능한 정부`라는 데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공무원 수는 많은데 일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정부를 바라는 국민은 아무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광복 이후 우리는 `작고 유능한 정부`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공무원 월급으로 나가는 지출 비중이 낮은 국가 중 하나이고, 공무원 총정원도 100만명을 넘기지 않기 위해 애써온 나라다. 증원 권한을 가진 기관에서 엄격한 심사를 해왔고, 덕분에 인구가 증가하고 경제 규모가 커지는 와중에도 한두 해를 제외하고는 매년 늘어나는 공무원 수를 1만명 이하로 유지해왔다. 

그런데 최근 이 기조가 무너지고 있다. 2016년에 8181명 늘어났던 총정원이 작년에는 2배가 넘는 1만9303명이나 늘어났고, 올해 말에 관련 통계가 발표되면 아마도 작년도와 비슷한 수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바야흐로 광복 이후 어렵게 지켜온 작은 정부 기조가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큰 정부라 하더라도 일만 제대로 한다면 괜찮을 수도 있다. 세금을 더 내더라도 유능한 정부를 원하는 국민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 정부가 커지기는 하지만 더 유능해지고 있다는 증거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오히려 유능한 인력이 속속 정부를 떠나고 있다는 징후가 보인다. 

전체 의원면직 숫자는 연금개혁이 가시화됐던 2015년을 정점으로 조금씩 줄어들고 있지만, 부처별 핵심 인력으로 간주되는 우수 인력은 점점 더 빠른 속도로 공직을 떠나고 있다. 2015년까지는 연간 40~50명 선에 그쳤던 민간기업 이직자가 2016년 이후에는 100명을 훌쩍 넘고 있는 것이다. 우수 인력이 앞다퉈 정부를 빠져나가고 있는 셈이다. 

대선 공약으로 공공부문 81만명 증원이 제시된 후 시들어가던 노량진 고시학원이 다시 북적일 정도로 청년들은 공직에 못 들어와서 안달인데, 이미 들어와 있던 분들은 왜 떠나고 있는 것일까? 

가장 큰 원인은 자괴감이다.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는 소신을 갖고 적극적인 자세로 일하면 "시키는 일만 잘하라"는 질타에 직면하고, 심한 경우 직권남용으로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돼버리는 동료 공무원들을 보면서 공직자로서 자괴감이 극에 달하고 있다. 청와대와 국회가 정한 방향에 따라 단순 집행만 하는 부속품이 돼가는 현실에 직면할 때 공직에 대한 미련을 버리게 되는 것이다. 

서울과 세종시를 오가는 것도 문제다. 대부분의 시간을 길에서 보낸다 하여 `길과장` `길국장`이라는 자조적인 단어로 불리는 것에서 알 수 있듯 물리적으로 힘들기도 하지만, 민간기업이나 연구소의 전문가를 만나서 최신 동향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퇴보하고 있다는 불안감도 크다. 

정부에도 `가성비`라는 개념을 적용할 수 있다면 `작고 유능한 정부`가 가성비 `갑`이고, `크고 무능한 정부`는 가성비 낮은 정부일 것이다. 작고 유능한 정부를 만들어가려면 우수 인력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은 전체 공무원 숫자는 커지고 있지만 우수 인력은 빠져나가고 있다. 그래서 최악의 정부, 즉 `크고 무능한 정부`가 돼가고 있는 것이다.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이라도 공무원 수를 대폭 늘리려는 포퓰리즘 공약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공무원의 전문성을 존중하고 정권이 아니라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자부심을 높여줘야 한다. 그래야 우수 인력의 유출을 막을 수 있고, 그래야 '작고 유능한 정부'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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